지난 9월 추석연휴 전,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는 IT갈등으로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최원병 회장이 8월 30일 IT본부분사 부장들과 가진 간담회 내용이 양재동 IT본부분사 직원들에게 전해지면서, 조직 전체가 술렁이게 된 것이다.

공식적인 간담회 내용은 일상적인 저녁식사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8월 23 결정된 e-뱅킹’ 관련 농협정보와 IT본부분사간의 갈등 봉합 차원 ‘면담’ 성격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 지난 8월 하반기, 농협중앙회는 e-뱅킹 개편을 위해 SK C&C를 주사업자로 선정했다.

농협 e-뱅킹 재구축 사업은 ▲기존 서버 구조를 웹/WAS 서버, AP 서버, DB서버 구조로 개편 ▲기존 인포믹스 기반 DBMS를 오라클로 개편 전환 및 2대 이상으로 구성 ▲새로운 프레임워크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사업이다.

당시 농협중앙회는 삼성SDS와 SK C&C에 지명경쟁 입찰을 보냈고, 제안서를 접수한 결과 농협정보-삼성SDS 컨소시엄, SK C&C가 각각 제안에 나섰다.

농협정보는 당초 제안요청서 발송대상이 아니었으나, 나중에 ‘억지춘양격’으로 받아갔다는 후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안서 발송이후, 농협정보 측이 IT본부분사 측에 제안에 나설 수 있게 해달라고 수차례 요청, 결국 제안요청서를 나눠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건은 8월 23일, SK C&C로 사업자를 선정한 이후 농협정보측이 서운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불거졌다.

김명기 농협정보 사장은 윤한철 IT본부분사 상무에게 ‘SK C&C 선정의 이유와 재고’를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두 회사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8월 30일 최원병 회장 ‘IT본부분사 전격 방문’ = 김명기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최원병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해 최 회장 재선에도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후문.

양재동 IT본부분사 측은 최 회장의 방문에 대해 ‘정기적인 격려모임’이라고 밝혔지만, 내막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제보의 내용을 종합하면, 최원병 회장은 IT본부분사 윤한철 상무 및 6명의 부장들과 술자리를 갖고, 이 자리에서 ‘SK C&C에게 e-금융 사업을 왜 줬느냐’를 따져 물었다.

최 회장은 이같은 문제로 밖에는 ‘IT본부분사와 농협정보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거칠게 나무란 것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최 회장은 “향후 농협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SI 사업은 농협정보를 거쳐 발주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언뜻 보면, ‘농협 IT사업을 안으로 흘리겠다’는 지적일 수 있지만, 결국 김명기 사장에게 농협 IT사업의 전권을 주겠다는 것으로 업계는 해석했다.

◆‘토사구팽’ 양재동 IT본부분사 ‘부글부글’ = IT본부분사 측이 농협정보에게 e-뱅킹 제안을 배제한 이유는 인터넷뱅킹 운영 사업자로 ‘미숙’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기준, 농협정보시스템이 운영을 맡고 있는 농협 인터넷뱅킹은 연중 내내 장애를 일으켰다. IT본부분사 입장에서는 농협정보가 미덥지 않았던 것.

또, 절차상 SK C&C 선정의 별다른 문제점은 없는 상황이다.

IT본부분사 측은 이같은 타당한 이유를 놓고 e-금융 사업자를 선정했는데, 최고 책임자가 이 정도 얘기를 들고 ‘시시콜콜’하게 따지는 모양새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특히, 농협은 작년 대규모 IT장애를 겪으며 IT본부분사 직원들의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직원들의 자부심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측근 챙기기’에 급급한 최 회장에게 ‘토사구팽’ 당했다는 식의 서운한 감정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계열사별 IT조직 출범…입찰구조 복잡해질 듯 = 최원병 회장의 SI 입찰 농협정보 몰아주기 발언은 또 현행 농협법에 반하는 정책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 농협법에는 IT본부분사가 현 농협중앙회 내에 교육지원부문에 소속돼 향후 3년간 NH금융지주와 NH경제지주의 IT서비스 지원을 맡게 됐다.

필요시 2년 연장이 가능하다. 총 5년을 농협중앙회 소속으로 운영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다.

물론, 입찰방식 등 관련 규정은 없어 SI를 농협정보가 발주해도 크게 문제될 점은 없다.

논란은 대체적인 지원조직과 IT시스템이 IT본부분사 소속인데, 인적, 물적 자원의 분리없이 무턱대로 SI를 농협정보에 몰아주는 것은 운영의 문제점을 노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최근 공정거래 정책 추세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고 볼 때, 최 회장이 현 농협법에 근거한 IT정책을 주문하는게 적절하다는 게 업계 일반론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에는 각 계열사별로 IT조직을 꾸리고, ‘구매권’을 달라는 목소리까지 있어 농협 IT정책의 혼돈을 부추기고 있다.

예를 들어, NH농협은행 백성현 단장을 비롯해 NH생명, NH화재, NH투자증권 등 각각의 IT기획 조직을 운영중이다.

이들 조직이 자사에 적합한 ‘IT정책 구사’를 내세워 IT구매권한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IT정책 혼돈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릴 내는 것은 당연한 얘기”라며 “그러나,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은 최고 의사결정권자부터 평직원까지 마찬가지 사명”이라고 지적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농협. 불안한 조직운영이 IT장애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