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이 인텔의 차기 아이테니엄 프로세서에서 운영되는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을 중단한다고 선언함에 따라 양 진영 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 시간으로 3월 22일, 오라클이 발표한 이번 조치는 인텔이 앞으로 내놓을 차기 아이테니엄 프로세서인 폴슨(Poulson), 키슨(Kittson)에서는 오라클 소프트웨어를 쓸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만일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텔과 HP로서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라클 소프트웨어의 서버 플랫폼으로 아이테니엄을 장착한 HP 서버 제품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점을 볼 때 오라클의 이번 행보는 HP에게 직격탄을 날린 셈이 됐다.

또 전체 아이테니엄 서버 시장에서 거의 독주하고 있는 HP가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제품을 탑재하지 못하면 인텔도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난 2004년 매디슨(Madison에 이어 2006년 몬테시토(Montecito), 2008년 몬트베일(Montvale), 2010년 투킬라(Tukwila) 등 2년 간격으로 아이테니엄 프로세서의 새 버전을 발표해온 인텔의 향후 로드맵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라클은 이번 조치를 내놓은 배경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스팍 프로세서 기반의 썬 서버의 시장점유율을 회복하려는 고강도의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2009년 4월 오라클의 썬 인수 계획 발표 이후 썬 서버의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점에서 이러한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프로세서의 개발에 드는 연구개발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는 점에서 그 투자를 보전할 수 있는 모종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한국HP는 “설마설마 했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라며 망연자실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HP 본사가 24일 내놓은 공식적인 보도자료에도 오라클에 대한 불괘감이 묻어 있다.

HP 기업용 서버와 스토리지 및 네트워크(ESSN) 사업 총괄 수석 부사장인 데이브 도나텔리는 “HP는 공정하고 정직한 경쟁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경쟁은 고객과 시장에 모두에게 유익하며, 혁신을 위한 토대가 된다. 불공정한 경쟁을 유발하는 것은 업계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도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아이테니엄 프로세서와 플랫폼 개발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HP-UX를 비롯한 다른 운영 시스템의 고객들에게 장기적인 로드맵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을 다시 한 번 약속한다”고 말했다.

양 진영의 제1라운드는 일단 여기서 끝났다. 오라클의 선공에 HP와 인텔이 대응 원칙만 내놓았을 뿐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오라클이 이번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인텔과 HP가 어떠한 후속 대책을 내놓을지가 관심을 모은다. 자칫하면 양 진영 간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그동안 아이테니엄 기반 서버에서 오라클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온 기업에서 어떻게 나설지도 궁금하다. 아이테니엄 서버 대신 과연 순수히 다른 프로세서로 플랫폼을 갈아탈지가 그것이다.

양 진영의 제2라운드가 어떻게 펼쳐지든지 요즘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고민하는 기업에게 불똥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오라클은 이미 아이테니엄에서 운영중인 오라클 소프트웨어의 기존 버전을 쓰는 고객은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