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마 중산층, 노동권 상실 후 빈민 전락
인공지능 일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선택지는?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 전역을 장악하는 정복전쟁에 참여했던 고대 로마의 시민들은 자신들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본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전쟁 승리의 일등공신인 자신들이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삶의 토대가 붕괴되어 중산층의 지위마저 잃게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승리의 주역들이 부와 명예를 소유하는 것이 고대 국가의 율법이자 정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역설적인 승리의 산법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상황은 이렇다.

로마의 시민, 즉 자영농을 중심으로 구성됐던 로마군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할수록 보다 많은 노예를 확보하게 됐다.

공화국 시절과 초기 제국 시절까지 로마의 영토는 급팽창하듯이 늘어만 갔다. 당연히 노예의 숫자도 급증했다.

노예들은 로마의 본국인 이탈리아 반도와 로마의 속주에서 거친 노동을 했다. 소수의 정치군인 및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대규모 농장, 라티푼디움이 그들의 일터였다.

반면 전쟁기간동안 자신의 농토를 돌보지 못했던 로마 군인(자영농)들은 귀환한 뒤 자신의 토지가 황무지로 변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당장 농업생산이 불가능했다. 설상가상으로 로마의 속주에서 값싼 농산물이 수입돼 시장에 넘쳐 흘렸다.

노예노동으로 부는 정치군인과 귀족들에게 집중된 데다 속주의 값싼 수입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로마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토대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할 권리를 타의에 의해 잃게 된 것이다.

어느 사회나 일자리를 잃고 빈민화 된 시민들은 이른바 ‘정치적인 골칫거리’다.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공화국 시절의 정치군인들은 자신들의 정권 창출을 위해 이들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들에게 빵과 술을 제공했다.

또한 제국 시절의 황제들은 권력 안정을 위해 시민들의 배고픈 입을 빵으로 채우고 그들의 날까라운 비판의식 마저 서커스로 둔화시키고자 했다.

그렇게 등장한 단어가 ‘빵과 서커스’다.

콜로세움 등의 원형경기장에서는 하루 12시간동안 일거리가 없는 로마의 시민들을 불러 모아놓고 빵을 제공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구경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러다이트'의 등장
사물인터넷 개념의 창시장 케빈 에슈턴의 최신작 ‘창조의 탄생’에는 자동방직기가 등장한 때의 영국에서 발생한 기계파괴운동 ‘러다이트’의 역사적 사례가 소개돼 있다.

1812년 4월12일 윌리엄 카트라이트라는 자본가 소유의 공장 노동자들은 그가 도입한 자동방직기를 파괴하기 위해 해머와 도끼 등을 들고 공장에 난입한다.

당연히 카트라이트는 자신이 고용한 파수꾼들과 함께 기계를 보호하기 위해 총으로 노동자들의 접근을 막으려 했다.

이 사건은 기계와 인간이 일자리를 두고 벌인 첫번째 유혈충돌이라고 에슈턴은 기록하고 있다.

러다이트는 신기술을 향한 대항과 변화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본질은 대항과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자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려고 자본에 저항한 것이었다.

문제는 진정 일자리(혹은 지위)를 상실한 사람들은 러다이트가 아니라고 에슈턴은 지적한다.

자동방직기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의 패자는 기계를 파괴하려했던 러다이트가 아니라 귀족이라고 그는 말한다.

자본가의 힘, 그 이상의 무력을 보유하고 있던 귀족들은 기계의 등장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기술 자체의 부상에 대해서는 무기력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도구는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 자본가의 기술은 새로운 사회를 향하는 나침반이자 동력이었다.

귀족들은 러다이트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해 자신들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러다이트의 후손인 우리들은 자동방직기의 후배들인 컴퓨터와 정보기술을 이용하며 현재 노동을 하고 있다.

에슈턴은 이 책에서 기계는 또 다른 일자리를 만들면서 진화했기 때문에 러다이트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두려움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 인공지능과 켄타우로스
2016년 알파고는 대한민국 국민을 모두 인공지능 전문가로 만드는 한편 전 인류에게 인공지능의 등장에 대한 새로운 경종으로 울렸다.

모두가 긴장 속에 인공지능을 지켜보았고, 언론은 알파고 관련 기사를 쏟아내면서 장안의 지가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지성들은 알파고가 인류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인공지능과의 공존 방법 등을 한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들은 인공지능을 러다이트의 대상으로 보지 말자고 말한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을 돕도록해 켄타우로스(그리스 신화 속의 반인반수)적 발전을 도모하자고 입을 모은다.

켄타우로스는 인간의 똑똑한 이성과 동물의 강력한 힘을 결합시킨 신화적 상징이다.

힘의 측면에서 생태계의 중간 서열에 있었던 고대인들은 항상 부족한 힘을 보충할 방법을 찾았다.

도구를 개발하면서 일부 보충하긴 했지만 여전히 고대인들은 많은 동물들에 비해 달리는 속도가 뒤쳐졌다. 그런 부족함을 상상력으로 달래며 만들어낸 것이 켄타우로스이다.

그런 켄타우로스가 21세기적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제퍼디쇼에서 인간 퀴즈왕을 물리쳤던 IBM의 ‘왓슨’이나, 프로바둑 세계를 평정하고 있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그 시작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켄타우로스적 접근의 단초는 체스 챔피언 카스트로프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지난 1997년 IBM의 초기 인공지능 ‘딥블루’에게 패하고 난 뒤 인간과 컴퓨터가 한 팀이 돼 체스를 겨루는 대회를 열었다.

체스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적용시키면서 기존에 없던 체스를 즐긴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이 의료업계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IBM의 ‘왓슨’은 의사들을 대신해서 쏟아지는 최신 논문 중 참고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서 인간 의사에게 전달하는 한편 CT와 MRI 데이터를 분석해 암을 포함한 중요한 질병을 진단하고 있다.

인간 의사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왓슨’을 참고해 의사들은 보다 정확하고 정교하게 수술에 임하면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듯이, 인간은 인공지능과 한 팀이 돼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팀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몇년 뒤가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인공지능이 일반화되면, 인류는 인공지능을 기준으로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기계를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즉 인공지능은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극명한 생산성 격차를 보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을 보유한 계급은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 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계급은 더욱 빈곤해질 것이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없는 사람들은 직업을 가질 확률 자체가 낮을 수도 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환한 로마 병사들처럼 황무지가 된 자신의 땅을 망연자실하며 바라 봐야 할런지도 모른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섣부른 예단은 삼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노동할 권리가 사라진 사회의 문제점을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를 통해 경험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수많은 인재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한 켄타우로스적 접근의 장점만큼 인공지능을 보유하지 못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을 도울 인공지능이라는 가치의 보편성은 그것의 보유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해야 하는 오늘날의 청년들처럼, 황무지가 된 토지를 바라봐야 했던 로마 시민들처럼, 인공지능을 못가져 기회를 가지지 못할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항시 염두해야 한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