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지주회장 동반 퇴진하면 사실상 사업자체 무산

지난 한주 세간을 뜨겁게 달군 뉴스는 국민은행(은행장 이건호)의 주전산기 전환을 놓고 벌인 지주사-은행간 갈등이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 논란의 쟁점은 ▲이 사업을 왜 추진하게 됐고 ▲IT본부가 어떤 내용을 허위보고 또는 보고 누락이 있었는지 하는 점이다.

<BI코리아>는 그동안 국민은행이 추진해 온 ‘주전산기 전환 추진’ 과정을 되짚어 보고 왜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는지, 향후 이 사업이 원안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여부를 점검해 봤다.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 어떻게 진행돼 왔나 = 지난 2010년 2월, 메인프레임 기반 차세대시스템 개발을 완료한 국민은행은 가동 2년전인 2008년, 7년 다년계약으로 한국IBM과 OIO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OIO(Open Infrastructure Offering) 계약은 오는 2015년 7월 만료된다.

2012년 9월, 국민은행은 OIO 계약 및 주전산기 전환을 전면에서 검토할 수 있는 ‘주전산기 전환 TFT’를 설립, 본격 실무검토에 착수했다.

이 때부터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 TFT’는 ▲업무영향도 분석 ▲기술적 문제점 분석 ▲비용구조 검토 등 점검에 나서 왔다.

같은해 11월, 이 주전산기 변경 TFT는 관련업체들과 워크샵을 갖고 ▲2013년 1~6월까지 PoC 및 파일럿 추진 ▲2013년 7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18개월 동안 리호스팅 시행 ▲2015년 2월 23일, 5일간 설 연휴를 기해 시스템 가동 ▲2015년 7월까지 메인프레임과 오픈시스템을 병행 운영 등 계획을 마련했다.

계획 수립 후 국민은행은 곧바로 2012년 11월 26~12월 24일까지 약 1개월간 1차 PoC를 수행한다.

그 결과 ▲오픈시스템 환경으로 자동변환 100% 성공 ▲업무 프로그램 DB I/O 안정 변경 ▲한글데이터 자동변환 정상 완료 등 기록을 남겼다.

이어 2013년 2~6월까지, 국민은행은 총 3억여원을 투입, AT커니와 함께 2차 PoC를 진행한다.

2차 PoC를 통해 국민은행은 ▲마스터플랜 수립 ▲2차 PoC를 완료한다. 마스터플랜에는 현황분석, 목표시스템 설계, TCO 분석 및 소요자원 산정 ▲이행로드맵 등을 마련하게 된다.

2차 PoC까지 마친 후 국민은행은 2013년 7~8월까지 약 한달간 EY한영을 주사업자로 ‘주전산기 전환’ 계획과 관련된 추진일정 등 컨설팅을 수행한다.

이 컨설팅은 은행 전략기획부 주도로 이뤄졌다. 국민은행 경영진이 주전산기 변경을 IT본부만의 일이 아닌, 전행적 차원에서 다뤄야 했기 때문이다.

컨설팅 보고서는 2013년 8월에 도출됐고 국민은행은 이 결과를 놓고 향후 주전산기 변경 일정을 본격 추진하고자 했다.

이같은 국민은행의 계획은 그러나 2013년 여름, 지주사 회장과 은행 경영진이 전면 교체되면서 일정이 계속 늦춰지게 된다.

◆“잃어버린 3개월, 은행 발목을 잡았다” = 국민은행이 주전산기 변경을 추진한 배경에는 현재 사용중인 메인프레임 용량이 21만 5000밉스에 달하는 막대한 용량 때문이다.

2008년 1차 계약 당시에는 송갑조 당시 CIO가 IBM 본사와 직접 담판을 통해 연간 318억원대 로 계약을 완성했지만, 재계약에는 이같은 협상력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1만 5000밉스에 대해 IBM이 내놓은 재계약 견적이 연간 700억원대를 상회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7년 기준, 5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주전산기 변경 관련된 각종 이슈를 미리 점검해 놓고, 한쪽으로는 IBM과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주전산기 변경이라는 카드를 활용한 것이다.

최종 컨설팅 완료 후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변경과 관련된 일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전략기획부가 컨설팅 완료 후 그 결과를 곧바로 IT본부 및 은행 경영진과 공유하고 일정을 추진했어야 하는데, 8월말 끝난 컨설팅 결과는 2013년 10월말에나 은행 IT본부와 공유했기 때문이다.

은행, 지주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약 3개월간의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11월초, 한국IBM은 7년 다년계약을 조건으로 국민은행 OIO를 연간 280~290억원(부가세 별도)에 지원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현행 국민은행이 한국IBM에 연간 지불하는 318억원 보다 대폭적인 할인율을 내세운 것이고 2013년 6월 30일, 우리은행이 체결한 OIO 내용과 비슷한 규모다.

국민은행 경영진은 이같은 IBM 조건을 배제한 채 2013년, 11월초 경영협의회에서 주전산기 전환을 의결하게 된다.

이어 2014년 1월 초, 이건호 행장은 한국IBM 셜리-위 추이 사장과 면담을 갖게 된다.

이 자리에서도 이건호 행장은 “한국IBM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주전산기 전환을 원안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변경 BMT TFT’를 꾸리고, 지난 3월초까지 자동변환툴을 활용한 ‘서버 사이징 측정 BMT’를 마친다.

그 결과, BMT에 참여한 HP, 오라클 등 업체들이 총 15개 가량의 시나리오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행 완료가 고작 6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은행 경영진, 정책 놓고 오락가락 = 2014년 3월, BMT가 완료된 후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전환 절차에 본격 착수한다.

국민은행은 주요 업체에게 사전 견적을 요청 4월초 LG CNS(1998억원), 한국오라클(2174억원), 한국HP(2315억원), SK C&C(2482억원), KB국민데이터시스템(2969억원) 등으로부터 견적가를 접수한다.

지주사 주장에 따르면, 4월 14일 한국IBM 셜리-위 추이 사장이 이건호 행장에게 5년간 1800억원대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이메일이 행장의 마음을 바꾼 배경이라고 밝혔다.

이후 국민은행은 4월 24일 이사회를 갖고, 부의된 주전산기 전환 사업을 승인한다. 이 자리에서 이사회 성원 9명 중 정병기 감사를 제외한 8명의 이사들이 찬성표를 던진다.

국민은행은 24일 이사회 통과 내용을 근거로 28일, ‘주전산기 전환 RFP’ 발송을 예정했으나 변수가 생긴다.

정병기 상임감사위원 산하 경영감사부가 28일 주전산기 전환 TFT를 전격 감사에 나서, 주요 서류 등을 가져다 본격 감사에 착수하게 된다.

감사는 ▲주전산기 전환에 외압이 없었는지 ▲허위보고, 보고 누락이 있었는지 등 여부를 따지기 시작한다.

이 감사 대상은 주전산기 전환 TFT를 비롯해 IT기획부, 관련 업체들의 영업대표까지 포괄적으로 이뤄졌다.

국민은행 경영감사부는 약 2주간 이 감사를 진행했고 주전산기 전환과 관련된 허위보고 및 보고누락 사례를 잡아낸다.

정병기 감사는 이사회에 부의된 80쪽 분량(요약분 3쪽) 보고자료에 허위사실이 발견됐다는 점을 들어 5월 16일 전격 감사위원회(정병기 감사 포함 총 4명)를 소집, 감사보고서 채택을 시도했으나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허위보고 및 보고누락 내용은 ▲리스크의 의도적 배제 ▲시스템 전환 과정상의 불공정 ▲시스템 교체로 인한 비용절감 내용 허위 ▲보안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등 포괄적인 감사 결과를 얻게 된다.

감사위원회 소집과 더불어 5월 19일 오전 9시. 정 감사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으나 이사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5월 19일 오후, 정병기 감사위원은 금융감독원을 찾아가 특별검사를 요청했고, 20일 금감원 검사팀이 전격 투입된다.

◆향후 전망은 = 국민은행은 23일 오전 9시께 감사위원회와 긴급이사회를 소집해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의혹과 갈등에 대해 논의했으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끝났다.

추가 이사회를 27일로 연기하는 듯 했으나 은행장 및 이사들의 일정에 따라 30일 추가 이사회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앞서 21일 오후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전환 제안서를 접수하고 SK C&C 단독 제안을 확인하게 된다.

단독 제안의 경우, 경쟁입찰 요건에 미달해 5일 이내 재공고 입찰 제안을 받아야 한다. 오는 28일이 최종 제안서 접수일이다.

이사회를 27일 마쳐야 하는 이유는, 또 SK C&C가 단독제안에 나서게 되면 평가 및 우선협상 사업자 선정일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업 백지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국민은행이 주전산기 전환 사업자를 선정한다고 해도 사업이 원만하게 진행되기 어렵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당초 국민은행이 계획했던 기간은 총 20개월, 작년 은행측이 3개월간 공백기간을 가진 후폭풍으로 현재 주전산기 전환 일정은 1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이 역시 6월달에는 인력들이 투입돼야 하는데, 이번주 사업자를 선정해도 협상기간이나 투입인력에 대한 검증을 거치면서 한달여 시간이 공전될 가능성이 높다.

일정이 늦어질수록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 사업 불확실성은 크게 늘어나게 된다.

자칫 2015년 7월 이후 한국IBM OIO 연장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국민은행과 주전산기 전환 주사업자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자칫 이번 갈등으로 이건호 행장과 임영록 회장이 동반 퇴진할 경우 은행 경영공백이 발생하게 되고, 신임 경영진이 사업백지화를 주도하게 되면 사실상 주전산기 전환은 원안이 그대로 추진되기는 어려워진다.

사면초가에 놓은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 프로젝트. 한국IBM이 어부지리가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