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는 지금 심각한 국면에 빠져 있다. IT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세상인 것은 분명한데, 시장은 정체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최악의 경제 여건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IT시장의 정체현상은 외부적 환경 요인이 아니더라도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다. 적층된 난제가 도사리고 있었고, 경제위기가 설상가상이 된 것이다. 과도한 IT비용에 대한 사용자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가고, 비용대비 IT의 효능은 썩 나아지고 있지 않는 현상이 그 난제다. 경제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IT시장에 쌓이고 쌓여온 이 오래된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한 IT업계의 본격적인 공론이 필요하다. 공론의 진짜 목적은 IT는 정체의 수렁에 빠진 것이 아니라 더 큰 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중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시행착오의 IT활용의 시대는 지났다=활용측면에서 요즘 IT비용에 대한 부담은 거의 극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렇게 됐는지, 그 원인은 몇 군데 대형 데이터센터를 돌아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통신회사를 둘러보자. 먼저 K사다. IT백화점이다. 없는 것이 없다. ERP, CRM DBMS/DW, 그룹웨어, KMS, SCM, BPM, ITSM/IT거버넌스, ECM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다. 유행에 따라 온갖 IT 솔루션을 다 도입했다.

과연 얼마나 잘 쓰고 있을까. 거의 장식품 수준이라는 게 내부 직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IT관리 또한 잘 안 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과연 K사만 그러할까. D사 역시 다를 바 없다. 전산실 역사가 꽤 오래된 연유에선지 여기저기 교체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낡은 하드웨어들이 구석구석 눈에 띈다.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이 하드웨어들은 회사 장부상 아직 사용연한이 남아있지만 거의 가동을 멈춘 지 오래다.

이번에는 제조업체인 B사의 전산실을 가보자. 가용 바닥 면적이 족히 100평은 넘어 보이는 전산실 규모답게 하드웨어 기종들의 면모 또한 다채롭다. IBM, HP, SUN, 후지쯔, EMC, 히타치 등 이른바 잘나가는 벤더들의 제품들이 마치 강남의 아파트 빌딩처럼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런가 하면 IT업계의 원로들이나 기억할 만한 DEC이나 유닉벡 같은 기종들도 구석진 곳에서 향수를 달래고 있다.

이러한 전산실을 통해 우리의 IT활용 역사가 얼마나 화려하고 우매했는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IT의 속성을 읽을 수 있다. IT는 갈증을 유발한다. 마치 목이 마르면 반드시 물을 마셔야 하듯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새로운 솔루션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 나은 컴퓨팅, 더 편리한 애플리케이션, 보다 빠른 네트워크, 해결의 끝이 보이지 않는 보안 솔루션들을 갈구한 것이다.

또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빚어지다보니 IT를 위한 IT가 줄을 이었다. ITSM이나 IT거버넌스, EA, SOA라는 개념은 바로 IT의 복잡성이 빚은 산물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IT활용 현장은 신기술이 제대로 적용되고 빛을 발하기보다는 시행착오가 더 많았다. 1차적인 책임은 덜 익은 기술을 공급하기에 급급한 IT벤더들에게 있다. 그러나 사용자들의 책임도 그에 못지않게 무겁다. 신기술에 대한 맹신으로 어리석었다.

IT 솔루션의 도입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제대로 투자를 해 최고 품질의 완벽한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자세보다는 저비용으로 고품질을 실현해보려는 도입 관행이 결국은 배꼽이 더 큰 비용문제를 불러왔다.

◆21세기 글로벌 기업은 엔터프라이즈 인텔리전스를=IT사용자들은 지난 시절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똑똑해졌다. 그 결과 이른바 IT시장은 조정기에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때맞춰 불어닥친 경기 위기 상황은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경기침체의 여파는 그렇다치고, 이를 계기로 우리는 이제 IT의 본질적인 기능을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두 가지 관점에서 IT를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비용절감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황인 만큼 TCO와 ROI를 보장하는 IT 솔루션을 제시하고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IT의 고도화, 또는 지능화를 본격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관점은 언뜻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IT는 IT대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대로 따로 노는 과거의 IT현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IT솔루션이 목적한 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서 ROI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통합적이고 연계되지 못하며 단순하지 않은 인터페이스 환경의 IT는 복잡하고 비용증가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IT는 비용측면을 떠나 그 본질적인 효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때를 맞고 있다. 사용자, 특히 기업의 경쟁력을 제대로 보장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대용량의 정보처리로 기업경쟁력에 기여한다는 것은 IT의 원시적 기능에 불과하다. 21세기 기업들은 글로벌 지식정보화시대에서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통찰력과 민첩한 전략 수립을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는 IT가 절실한 것이다.

◆혜안을 갖춘 IT를 꿈꾸며=요즘 정보화 현장은 IT의 지능화라는 고지를 넘어서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의 두뇌를 대신해 대용량 정보를 처리해주던 정보화 수단을 이제는 지능화된 몸체로 만들려는 노력이다. 다소 과장하자면, 인간 고유의 혜안까지도 IT로 실현시키려는 인류 최대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생존과 번영을 갈구하는 모든 것들은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현상들과 내·외재하고 있는 변수들의 변화무쌍한 도전 속에 둘러싸여 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통해 산더미처럼 쌓이는 온갖 변수를 지능화된 IT를 통해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행동지침을 미리 만들어내는 예측행위가 IT투자의 본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IT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는 그 예측 기능이 가장 절실한 곳이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성장과 침체의 파고를 잘 헤쳐 나가야 하는데 그 열쇠가 바로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서 탄탄대로를 찾아내는 일의 단초가 신뢰성 있는 예측 기능이고 IT가 그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엔터프라이즈 인텔리전스’는 IT의 고도화를 본격 논의함으로써 IT의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는데 기여하고, 더불어 부가가치 높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