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 SI 우선협상 역사상 최장기간 협상 기록이 나왔다.

지난 2013년 1월 30일 오후 기업은행(은행장 조준희)과 삼성SDS(대표 고순동)은 ‘포스트차세대 계정계 재구축 사업’ 관련 계약을 체결했다.

2012년 8월 10일경 우선협상 사업자가 결정된 이후 총 5개월 가량이 소요된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른 ‘우선협상 기간’은 약 3주에 불과한데, 그 8배 이상의 기간이 소요됐다.

당초 사업규모 900억에서 줄어든 780억대로 추산된다.

이번 사업의 범위는 계정계시스템 재구축, 비즈니스 허브 인프라 구축(MCA), EAI시스템 고도화, 대외계시스템 통합, 포스트 차세대 개발 인프라 구축 등 5개 영역에 해당한다. <그림 ‘계정계시스템 재구축 대상 시스템 개념도’ 참조>

▲ 그림 ‘계정계시스템 재구축 대상 시스템 개념도’

사업범위에 따라 삼성SDS는 기업은행 주계약 후속 대응으로 비즈니스 허브, MCA, EAI, 인프라 등 솔루션 추가계약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솔루션 공급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예상했던 이들 사업자는 개발자 공급 매출만 마쳤을 뿐, SW 공급 매출은 올해로 넘기게 됐다.

그만큼 두 회사 계약이 늦어지면서 남긴 상흔은 제법 컸다. <BI코리아>에서는 지난 5개월간 숨 가빴던 두 회사의 협상 현장을 되짚어 봤다.

◆10월 5일경 협상결렬 ‘선언’…“누가 누구에게??” = 두 회사의 협상 진척이 지지부진하다는 얘기가 전해진 것은 2012년 추석명절이 지난 직후인 10월 4~5일 경이다.

사실, 8월 10일경 우선협상 사업자가 선정됐지만, 이후 9월말 추석명절까지 기업은행이 비즈니스 허브, 통합단말, EAI, MCA 등 솔루션 BMT 및 PoC를 시행하느라 삼성과 제대로 된 협상을 진행하지 못했다.

특히, 삼성SDS가 이들 솔루션 공급 계약도 체결해야 하고, 선정된 솔루션 기술셋에 따라 투입되는 인력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삼성과 기업은행의 본 협상은 9월말 이후라고 봐야 적절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9월말 추석 명절 전후 협상이 답보상태에 놓이더니 10월초 삼성SDS 이모 수석이 기업은행 미팅을 하고 나와 ‘협상이 결렬될 수 있다. 가격 이견이 크다’는 충격적 소식을 전한다.

이후 삼성SDS는 주요 솔루션 협력사 및 인력 소싱 업체들을 상대로, 가격 이견으로 “공급가를 낮춰야 한다” 취지로 잦은 견적 요청이 이뤄진다.

그러나 이같은 삼성의 행태는 11월 초, 급반전으로 논란에 휩싸인다. 계약 책임을 맡고 있는 이모 부장은 “10월 한달간 가격 협상은 시작도 안했는데, 가격 이견은 무슨 소리냐”며 논란이 촉발된다.

기업은행 이모 부장은, 10월 5일 전후 삼성 이모 수석의 “협상이 결렬될 수 있다”는 긴박한 상황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나온 얘기인지 격분했다는 후문이다.

금융IT 업계는 지금까지도 삼성측이 솔루션 공급가를 낮추고 SI 단가를 끌어올려 자사 이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역정보를 흘린 것으로 추론중이다.

물론, 기업은행과 삼성SDS는 제안범위와 개발범위의 차이가 크다는 점, 개발공간 문제까지 거론하며 10월말까지 다각적인 협상을 벌였지만, 정작 가격협상은 11월에 윤곽을 보이기 시작한다.

10월 협상에 참여했던 삼성SDS 프로젝트 이행팀 일각에서 ‘협상이 결렬될 것이라는 프로젝트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시기다.

◆11월 12일 인력 선투입 = 11월부터 본 가격 협상에 나선 기업은행과 삼성SDS는 자칫 해를 넘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인력 선투입을 결정하게 된다.

삼성SDS와 협력업체는 초기 150여명 투입을 전제로, 약 2개월짜리 단기 계약을 맺는다. 기업은행은 본 계약에서 2개월분에 대한 10~20%의 금융비용을 추가해 주기로 합의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경남은행 차세대 제안작업이 시작되면서, 삼성에서 투입한 인력 중 테크니컬 아키텍트(TA) 등 일부 개발자가 기업은행 프로젝트 현장을 이탈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던 기업은행, 삼성SDS는 쟁점 사항을 정리하면서, 11월말에, 12월초 퇴사한 정모 상무의 주관하에 담판에 나서게 된다.

이 시기를 전후에 ‘부가세 쟁점’이 불거진다. 기업은행이 부가세를 포함해 이사회 승인을 얻은 예산은 720억, 삼성SDS가 인력 등을 구성해 계약담당 부서에 넘긴 가격은 814억에 달한다.

720억과 기업은행이 최대로 줄 수 있는 20억 가량을 합한 740억과 삼성이 받겠다는 금액이 자그마치 70억 이상 차이를 보인다.

기획재정부,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 국가 주요기관의 감사를 받는 기업은행이 이사회에서 70억 예산을 추가로 받아내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었다.

두 회사는 “솔루션 구매 예산을 낮추자”, “고가의 SW를 대체하자”, “개발업무를 일부 조정하자”는 등 지혜를 모으기 시작했다.

12월초 협상의 측면 지원하던 삼성SDS 정모 상무가 퇴사하고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기업은행, 삼성SDS 경영진까지 나서 ‘협상의 판을 깨지 말자’고 결의까지 했다.

금융사업부 총괄 이재한 전무 등이 나서, 기업은행 조용찬 부행장, 고순동 사장, IBK시스템 김광옥 사장 등이 이 결의와 관련, 12월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 이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였던 두 회사 협상은 또 난관에 빠진다. 기업은행이 계약을 종용해도 삼성이 꼼짝하지 않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11월, 인력 선투입 결정때 이모 부장이 “본 계약은 올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했는데, 삼성이 이 조건을 악용해 최대 가격을 받아내려고 기업은행 계약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풀이했다.

삼성그룹 인사와 삼성SDS 내부 조직개편이 병행되던 시기라, 딱히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12월 말 기업은행 여건을 감안하면 삼성은 12월 중하순에는 계약을 시도했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기업은행은 금융회사 성격상 연말 특히 12월 28~31일은 자금집행을 하지 않는다. 27일도 가급적 지출이 나가는 구조는 차단하고 필요할 경우만, 종합기획부와 협의한다.

계약 후 계약금이 지급돼야 하는 구조, 삼성이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업은행은 12월 17~24일까지 수차례 계약에 응할 것을 요구했는데, 삼성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협력업체가 이미 2개월 후 1월 12일까지 계약이 돼 있고, 인건비는 지급되는 구조라 논란은 크게 불거지지 않았지만, 연말 두 회사의 협상 결렬은 두고두고 논란을 이었다.

◆“살다가 이런 논란도…” = 연말연시 두 회사의 사업계획 수립, 인사 등 분위기 속에 1월, 추가계약 얘기가 흘러나오더니, 1월초 급기야 본 계약 이전 1개월 연장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시기가 이맘때쯤 되자 다국적 솔루션 기업까지 글로벌 본사에 잦은 허위보고 모양새가 됐다는 후문이다.

지칠대로 지친 두 회사 협상은 또 다른 난관을 만난다. 개발장소로 빌리기로 한 ‘삼성SDS 연구소’ 임차료를 놓고 두 회사가 공방을 벌인다.

당초 삼성SDS가 제안한 임차료는 20억인데, 그 금액이 30억, 40억으로 계속 늘어난 것이다.

빌딩 소유주가 삼성과 기업은행이 들어온다는 얘기에 임대료를 계속 올렸다는 게 소문만 무성할 뿐, 이 ‘고무줄 임차료’를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IT업체 관계자는 “살다가 임차료 논란 때문에 본 계약이 안된다는 게 참 씁쓸하다”며 혀를 찼다.

국내 금융IT 최장 우선협상 기간을 기록한 기업은행 차세대. 그 열매도 기록에 남길 만큼 달게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