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의 진’ 메인프레임 교체 검토할 수도

올해 안에 OIO(Open Infrastructure Offering) 재계약 협상을 마무리하려던 우리은행(은행장 이순우)과 우리FIS(대표 권숙교) 안팎에 국민은행이 추진 중인 ‘주전산기 변경 검토’ 분위기가 감지됐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을 한시적 조건으로 내걸었던 우리은행과 한국IBM간 OIO협상이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오는 2013년 10월 3년 OIO계약 만료일을 앞두고 우리은행, 우리FIS, 한국IBM이 복잡한 셈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OIO 재계약에 대한 주요 사업 내용은 여전히 검토 중”이라며 “다만, 연내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BI코리아>에서는 그동안 우리은행, 우리FIS, 한국IBM간 협상 내용과 향후 전망을 분석해 봤다.

◆우리은행-한국IBM, 어떤 협상 오갔나 = 우리은행의 현재 OIO 계약은 지난 2010년 10월부터 적용돼 2013년 9월 31일까지 연간 294억~322억까지 3년간 지급하는 형태로 돼 있다.

당시 계약은 해지배상금 없이 중도해지가 가능한 모델이다.

지난 1월 25일 인터넷뱅킹 장애를 겪은 우리은행은 직간접 책임을 물어 한국IBM에게 OIO 재협상을 요구한다.

3월부터 우리은행은 ‘우리FIS 없이’ 단독으로 한국IBM과 갖가지 협상을 치르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IBM 협상 방식은 전형적인 조삼모사 전략”이라며 “처음에는 금융사업본부가 협상을 주도하다가, 다음에는 메인프레임 사업 담당, 다음에는 서비스 부문 등 부서를 교체해 가며, 협상조건을 바꾼다”고 전했다.

한국IBM이 우리은행과 이같은 협상방식을 채택했는지 전해지지 않았지만, 은행 안팎에서는 ‘담당 부서가 여러 번 교체된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협상 조건 역시 금융사업부는 ‘가격 소폭할인’에서 메인프레임 사업부는 ‘다른 시스템 기부’, 서비스 사업부는 ‘OIO 무상 서비스 내용 추가’ 등 은행측이 제시하는 ‘가격 대폭 할인’조건을 회피하는 방식을 택한다.

9월초 한국IBM은 지루한 협상에 방점을 찍겠다며 ‘연간 280억 기준 5년 다년 계약, DS 시리즈 스토리지 60억원대 무상지원’ 조건을 내건다.

이 협상조건은 단 9월안에 계약을 체결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

우리은행은 이 조건이 연간 30억 가량 비용을 절감, OIO 계약 5년을 더해 150억 그리고 DS시리즈 스토리지 60억을 합하면 적어도 200억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가 기대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오는 2013년 우리은행은 노후화된 스토리지(한국EMC 기종) 상당부분을 교체해야 한다. 한국IBM은 이를 노리고 ‘스토리지 무상지원’을 내건 것으로 추정된다.

적정선의 협상이라고 보고, 우리은행은 5년 다년계약에 1400억 초반 협상을 진행, 진척도를 보이게 된다.

그런데 시의적 조건이나 내용면에서 ‘이전 조건보다 나아지지 않은 협상’이었다는 게 은행 안팎의 지적이다.

우선, 표면적으로 연간 280억이면, 기존 계약에 비해 약 10~20% 할인 가격이다.

그러나, 기존 3년 기간에 비해 5년 조건이면 으레 따라오는 10% 할인을 ‘한국IBM이 할인해 주는 것’같은 생색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BI코리아>가 확보한 각종 자료를 분석하면, 한국IBM OIO는 1년 단기계약보다 3년 이상 계약이 10% 가량 할인되고, 5년 이상 다년계약은 추가할인이 이뤄진다. 원래 있던 네고방식이다.

또 은행이 OIO 계약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주사 투자심의위를 비롯해, 경영협의회, 은행 이사회를 거쳐 우리FIS가 사업 내용을 이관받아 처리하게 돼 있다.

올 추석연휴가 9월에 있었고, ‘9월 안에 계약을 할 경우’라는 한국IBM 단서 조항을 맞추기에는 한달안에 처리해야 할 우리금융그룹 안의 절차가 너무 많았다.

아울러 우리FIS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현재 메인프레임은 우리FIS 소유로 돼 있다.

물론, 아웃소싱 계약 해지시 은행으로 소유가 이전되지만, 어쨌건 OIO 협상으로 우리FIS ‘자산의 변동’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 협상은 우리FIS없이 은행 단독으로 추진돼, 논란을 불러왔다.

아울러 한국IBM이 기증을 제안한 ‘DS시리즈 스토리지’를 계정계 시스템에 사용하는 국내 대형은행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은행이 기증받아도 ‘효성이나 EMC 스토리지’를 재구매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IBM DS 시리즈는 ‘돈을 주고 사서 쓰는 장비’가 아니라, 돈을 받고 테스트를 해줘야 할 장비”라고 꼬집었다.

우리은행의 판단력을 흐리는 전형적인 한국IBM ‘조삼모사’ 작전이었다.

◆은행, 우리FIS ‘한국IBM에게 당했다??’= 10월 이후에도 OIO 재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은행과 우리FIS 안팎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은행, 우리FIS 모두 한국IBM의 작전에 휘말렸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시작한 것.

특히, 은행측이 우리FIS에 ‘한국IBM이 내건 OIO협상대로 계약을 추진해 달라’는 요청에, 우리FIS는 ‘5년후 다운사이징에 나설 것인지 여부를 이사회 승인을 거친 공문으로 보내달라’며 감정으로 맞섰다.

당초 친 IBM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권숙교 사장이 겉으로는 ‘일처리 과정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은행에 내비치는 한편, 한국IBM에 대해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는 후문이다.

특히, 우리FIS 안팎에서도 ‘은행과 단독협상’에 나선 한국IBM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는 상황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우리금융그룹 IT부문 원투펀치가 ‘한국IBM’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게 된 것.

현재 우리FIS는 최낙부 상무 아래 부창일 부장이 은행과 OIO협상 협업 파트너로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9월초 국민은행이 ‘주전산기 변경 검토’ 착수사실이 알려지자, 우리은행 이사회 주변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우리은행이 그동안 한국IBM과 맺은 ‘OIO굴욕’에 대해 재인식하는 한편, ‘그들이 한다면, 우리는 못할까’라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IT부문 관계자는 기자의 질의에 “우리가 (다운사이징 또는 리호스팅)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라며, 의미심장한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2012년 우리은행은 하드웨어 454억원, 소프트웨어 454억원, 개발비 227억원 등 총 1136억에 달하는 다운사이징 예산을 이미 반영해 놓은 상태다.

당시 상황이 메인프레임 OIO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엄포용이었다면,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게 은행 안팎의 전언이다.

사실상 국민, 우리은행 우리나라 최고은행이 앞장서서 ‘주전산기 변경 검토’를 배수의 진으로 칠 것으로 보인다.

두 은행이 향후 행보를 공조할지 여부와 한국IBM의 대응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