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새로운 네트워크 비전(New Network vision)’을 발표해 미래형 네트워크 솔루션을 제시한 바 있는 주니퍼네트웍스는 최근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 네트워크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해보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에는 주니퍼네트웍스 아태지역 CTO인 라구 수브라마니안 부사장이 참석해 ‘New Network’이라는 주제로 주니퍼의 네트워크 전략을 소개했다. 라구 수브라마니안 CTO는 “네트워크 트래픽의 급증에 따라 장비 구매 등 비용은 증가하고 있지만 수익성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성의 혁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그 방안으로 “네트워크에도 ‘플랫폼’ 원칙을 도입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라구 수브라마니안 CTO의 발표 내용을 싣는다.

◆모든 산업 분야 혁신 성공의 공통적인 법칙은 ‘플랫폼’ 도입 = 그동안 여러 산업 분야에서 펼쳐진 혁신의 성공사례를 보면 ‘공통적인 법칙’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금융 분야를 보자. 금융 분야의 지난 100년간(1910년~2010년) 가장 큰 혁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스톡옵션, 파생상품... 등의 답이 나왔는데 가장 많이 거론한 것은 바로 신용카드였다.

혁신 전략가들은 “신용카드는 상품이 아니라 플랫폼”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신용카드의 양축에는 구매자와 가맹점(상점)이 있다. 구매자는 신용카드 없이 거래할 수 있다. 신용카드는 단지 사고파는 행위를 좀더 쉽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신용카드는 플랫폼이라는 얘기다.

다음은 소매업을 들어보자. 소매업의 지난 100년간 가장 큰 혁신으로는 1920년대 등장한 수퍼마켓과 1970년대의 쇼핑몰 등 2가지를 들 수 있다. 2가지 역시 상품이 아니라 플랫폼이다. 수퍼마켓이나 쇼핑몰이 새로운 것을 만들기 보다는 쇼핑을 좀더 쉽고 편리하게 해주는 점에서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비디오 게임 분야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오락실에 가서 각종 게임기에 동전을 넣고 즐겼지만 소니와 닌텐도의 등장으로 이러한 모습이 사라졌다. 게임 산업 역시 플랫폼화한 것이다. 인류는 과거 수천년동안 게임을 해왔다. 소니와 닌텐도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게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IT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윈도우는 문서작성기 등 프로그램을 쉽게 쓸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이폰이라는 플랫폼 기반의 어플은 무려 17만5천여종에 이른다. 그리고 구글은 100년간 광고 분야에서 텔레비전과 더불어 가장 큰 혁신으로 꼽힌다.

◆네트워크 업계, '경제성'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 하이테크 산업 분야에서 플랫폼 전략을 잘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현하려고 시도조차 않는 분야는 네트워크 산업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네트워크 업계는 하이테크 산업의 공룡같은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니퍼네트웍스는 2009년에 네트워크 업계 최초로 플랫폼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전체 네트워크 산업의 큰 그림을 제시한 것이다. 이같은 결론은 지난 10여년간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얻은 것으로, 과거 접근 방식으로는 네트워크가 안고 있는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으며, 갈수록 문제는 점점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네트워크가 해결해야할 문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경제성’이다. 소니 또는 닌텐도의 등장으로 기존 오락기계는 사라졌다. 그 이유는 경제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수퍼마켓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변 상점도 망한 것도 경제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산업 분야는 과거의 경제성으로는 타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AT&T는 유선 사업 분야에서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그 돌파구를 휴대전화 산업에서 찾고 있다. 프랑스텔레콤은 수익성 확보 방안으로 모바일 업체를 인수했다. 그리고 일본 NTT는 도꼬모를 인수했다. 과거의 경제성으로는 타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표적인 예다.

대체적으로 이동통신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보면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 이유는 각 나라별로 상황이 다르겠지만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다. 트래픽 량이 엄청나게 급증함에 따라 장비 구입 등 투자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수입은 평탄한 추세를 보인 것이다. 트래픽 증가의 원인은 비디오 데이터로서, 미국 동영상 전문사이트인 유투브의 2009년 트래픽 생성량은 2000년 전체 인터넷 트래픽보다는 더 많았다는 분석자료가 있다.

혹자는 비용은 언젠가는 내려가고 이에 따라 매출 구조는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최고의 시나리오를 채택해도 오는 2015년에 이르면 기존 네트워크의 경제성은 허물어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경제성을 해결하기 위해 인수합병으로 입지를 강화하거나 네트워크 자체를 철도처럼 국영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NW 산업 문제 해결하려면 써드파티와 더불어 에코시스템 만들어야 = 주니퍼 네트웍스의 입장은 단순하다. 경제성의 혁명 없이는 네트워크 산업의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그 경제성의 혁명 방안으로는 플랫폼 원칙을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써드파티와 더불어 에코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모든 산업 분야는 혁신 방안으로 이 길을 선택했다. 어플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애플 아이폰 처럼 주니퍼도 이같은 플랫폼을 만들고, 여기에서 써드파티들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그 어원은 플래이트(plate, 접시)이다. 이 접시 위에 음식(애플리케이션)이 올라온다. 중요한 것은 접시가 아니라 음식이다. 하지만 접시가 없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주니퍼네트웍스가 꿈꾸는 이러한 ‘플랫폼’이라는 비전을 실현하려면 기업 입장에서 2가지를 갖춰야 한다. 겸손함과 개방성이 그것이다. 겸손함은 주니퍼 네트웍스가 싱태계안에 존재하는 기업에 대해 충분히 지원하겠다는 것이며, 개방성은 파트너십을 뜻한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주니퍼네트웍스의 플랫폼 전략을 두고 시스코와 비교하는데 이는 중요한 얘기가 아니다.

주니퍼네트웍스의 플랫폼 이름은 주노스(Juno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