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시대의 트로이와 그리스” - 이번호
◆“2800년전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노래한 까닭”
◆“일리아스에서 읽어낼 수 있는 덕목”
◆“21세기의 관점에서의 ‘일리아스’

#야후, 노키아의 쇠락
1990년대 ‘닷컴시대’를 사실상 이끌었던 ‘야후(Yahoo)’가 22년만에 초라한 모습으로 퇴장한다.

지난달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에 야후 황금기 시가총액의 4%에 해당하는 48억 달러에 팔린 것이다.

한 때 인터넷 포털 시장의 최고 강자로 군림하면서 초기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을 주도했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왔지만 혁신적인 검색엔진을 들고 나온 구글에게 역전되면서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던 ‘야후’였다.

일반인들이 인터넷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고 있을 때부터 ‘인터넷 포털’이라는 개념을 주도할 정도로 선구적이었던 기업, 2000년대 초반 전세계 검색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던 기업이 불과 22년만에 쓸쓸히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야후의 퇴장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체성의 혼란’을 직접적인 쇠락의 이유로 들었다.

물론 구글, 페이스북 등의 인수를 통해 야후는 혁신을 도모하려고도 했지만, 매번 실기하면서 외부 요인에 의한 혁신의 기회는 사라져갔고, 더욱이 영입한 CEO의 전략 혼선으로 야후만의 정체성은 사라져갔다.

IT 기업인지, 미디어 기업인지 시장에서의 정확한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자력으로 움직일 동력을 잃고 물살에 의탁해 흔들리는 배마냥 파도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PC에서 모바일로 변화되는 시장흐름을 제때 따라가지 못한 것은 회복 불가능한 야후의 실책이라고 한다.

이미 검색엔진에서 구글에 뒤쳐진 상황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페이스북에 눌리고, 채팅 플랫폼에서도 스냅챗 등에 밀리면서 인터넷 생태계에서의 효과적인 변신을 주도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야후의 모습은 휴대폰 시장을 주도했던 노키아를 연상시킨다.

20세기부터 21세기초반까지 전세계 휴대폰 시장의 40%을 점유했던 노키아의 몰락을 노키아가 잘 나가던 시절 예측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키아의 쇠락은 자사 기술에 대한 지나친 확신 그리고 시장점유율이 만든 자만,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에 대한 확신 부족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애플보다 더 먼저 스마트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상용화시기에 대해 의심했던 노키아는 그 이후 애플과 삼성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됐고, 결국은 휴대폰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일리아스’ 시대의 트로이와 그리스
트로이 전쟁이 펼쳐질 당시, 그리스의 주도적 폴리스는 미케네였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상대적으로 풍부한 농산물은 스파르타와 함께 폴리스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이 돼 줬던 것이다.

또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트로이의 셋째 왕자 파리스에게 자신의 왕비를 납치 당한 메넬라우스는 형제지간이었다.

당연하게도 트로이에게 왕비가 납치 당하자 메넬라우스와 아가멤논은 자신들의 경제력을 토대로 전체 폴리스의 군사를 모아 전쟁을 주도한다.

이것이 ‘일리아스’에서 이야기하는 전쟁의 원인이자 초기 경과이다.

실제 흑해 연안은 지금도 그렇지만 곡창지대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 위쪽의 그리스 땅에선 포도와 올리브가 생산될 뿐 주식인 밀은 매우 부족했다.

결국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무역거래 내지는 식민지 경영을 통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 눈길이 가는 곳은 밀의 곡창지대였던 흑해 연안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의 앞바다인 에게해에서 흑해로 들어가기 위해선 트로이가 지키고 있는 해협(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자유롭게 이 해협을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흑해의 관문을 지키면서 통관료를 받던 트로이는 이미 지역의 패자로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계무역을 통해 경제력 또한 그리스 폴리스들이 당해내지 못할 수준에 달했다.

메넬라우스의 부인 헬레네를 납치한 것이 원인이 됐든, 무역루트 흑해 출입구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였든 그리스 폴리스의 입장에서 트로이는 막강한 지역의 경쟁자였다.

어쩌면 미케네와 스파르타 등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폴리스 정도의 군사력으로는 공격을 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폴리스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구성된 점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가멤논은 자신들의 경제력과 헬레네와 결혼 구애를 할 때 맺었던 약속에 근거해 그리스 전체의 연합군을 구성해서 트로이 공격에 나선다.

이 전쟁에 참여한 연합군 전함이 1000척을 넘어설 정도로 큰 규모의 원정군을 이끈 것이다.

막강한 전력으로 트로이를 공격했지만 그러나 이 전쟁은 10년 이상을 끌면서 승패를 가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인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는 물론 아이아스, 디오메데스, 파트로클로스 등 당대의 쟁쟁한 영웅들이 그리스 연합군 진영에 포함돼 트로이 함락 작전을 펼쳤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트로이의 맹장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여전히 그리스연합군은 트로이를 함락시키지 못한다.

겨우 오디세우스의 지혜로 함락을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만큼 트로이가 난공불락의 요새였으며, 경제력을 토대로 튼튼한 군사력까지 갖추고 있었던 국가라고 볼 수 있다.

# 트로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그리스 연합군
그런데 아가멤논과 메넬라우스는 트로이의 실체를 전혀 몰랐다. 그들은 겨우 자신의 왕국인 미케네와 스파르타의 군사력으로는 트로이를 함락할 수 없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트로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트로이 전쟁에 죽어간 영웅들과 그리스 전사들. 그리고 10년간 이들을 기다리던 가족들의 삶이 첫 번째 비용일 것이다.

이와 함께 10년간 이들이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기간 동안 폴리스의 농업생산량은 급격히 떨어졌을 것이다.

남아 있는 시민과 노예들에 의해 농업과 목축업이 유지됐겠지만 전쟁으로 인한 기회비용만큼의 손실은 불가피한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측면 등 모든 면에서 가장 큰 손실을 본 사람은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일 것이다.

우선 그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모은 연합군의 1000여 척의 배를 출항시켜야 했는데, 풍랑이 그치지 않자 잔잔한 바다를 얻기 위해 그의 딸을 재물로 바쳐야만 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의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헬레네와 쌍둥이 자매)는 10년 만에 전쟁에 이기고 돌아온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막대한 돈을 들여 그리스연합군을 구성해야 했고, 출항을 위해 그의 딸을 제물로 바쳐야 했으며, 귀환한 이후에는 왕권은 물론 목숨까지 내놓고 만 것이다.

이처럼 트로이 전쟁을 통해 헬레네를 구출하고 무역로를 확보했지만, 그리스 연합군은 큰 이익을 얻지는 못했다. 특히 미케네와 아가멤논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 아가멤논, 야후 그리고 노키아
모바일 시대를 제 때 준비하지 못한 결과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는 야후, 스마트폰 시장을 예측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않은 노키아.

이들은 모두 잘 나가던 시절 그들의 경쟁자가 등장했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자신의 한계도 파악하지 못한 기업들이었다.

트로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원정전략을 추진한 그리스 연합군의 아가멤논처럼 말이다.

아무리 실적이 좋고 수위를 기록하는 기업일지라도 한계는 가지고 있으며, 혁신을 새로운 무기로 들고나오는 경쟁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고 경쟁자의 실체마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기만 하다.

그런데 인간은 28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후 연재물을 통해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가 전하는 메시지를 21세기의 시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