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적 감수성, 사업 아이템으로 제 때 포착
잡스의 성공원인, 인간 중심의 과학적 상상력

영화 ‘스티브 잡스’의 개봉이 임박했다. 영화 ‘잡스’(2013)에 이어 두 번째 만들어지는 고(故) 스티브 잡스에 대한 영화다.

1984년 매킨토시 발표와 1988년 넥스트 큐브의 런칭 그리고 1998년 아이맥 발표장 등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인 메디아스 레스(in medias res)’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라고 한다.

‘인 메디아스 레스’는 ‘사건의 한 가운데로(핵심적인 것으로)’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본질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사건 내지 인물 전체를 극명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9년간 벌인 트로이 전쟁의 모습을 50일간의 핵심적 사건으로 정리해 낸 ‘인 메디아스 레스’ 방식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스티브 잡스’도 잡스가 마이크를 잡은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소재로 잡스의 핵심적 측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각 프레젠테이션 장면은 행사장에서 있었던 40분간의 장면을 촬영한 독특한 영화적 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골든글로브 등 여러 상에 노미네이트돼 작품성도 갖추고 있다는 평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이 시점에 다시 스티브 잡스가 영화로 만들어지는가이다. 그에 대한 영화 ‘잡스’가 상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그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1년 그의 전기 ‘스티브 잡스’가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간될 때 나타났던 대중의 관심이 다시 재연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당시 민음사에서 출판된 ‘스티브 잡스’ 한국판은 우리 출판의 역사를 새로 써야할 만큼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최단기 최다판매부수를 기록하는 한편 온라인서점 일일 판매 기록을 연일 경신하기도 했다.

그해 10월 24일 초판 10만부를 단 며칠 만에 완판된 것은 물론 10월말까지 약 70일 동안 50만부를 판매했고, 90일째는 55만부를 넘어섰다.

심지어 번역의 잘잘못을 따지는 번역 전문가들 간에 ‘번역 베틀’이 붙었을 정도로 ‘스티브 잡스’는 2011~12년 겨울과 봄 사이를 뜨겁게 달궜다.

▲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스티브 잡스' 포스터 사진

# “스티브 잡스, 신화가 되어 귀환하다”
이 뿐이 아니다.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국내 출판 도서는 네이버 검색만으로도 100권을 훌쩍 넘어선다.

구글 검색에서도 스티브 잡스는 IT 관련 인물 중 단연 압도적이다. 한글 기준으로 ‘스티브 잡스’ 관련 웹 페이지는 ‘빌 게이츠’의 75만보다 25만이 많은 100만 건에 달한다.

영문 기준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름 전체를 검색할 경우 ‘스티브 잡스’는 6700만 건이며 ‘빌 게이츠’는 6370만 건이다.

‘잡스’만으로 검색할 경우 21억 건의 문건이 검색된다고 구글은 말하고 있다.

그가 죽은 지 이미 5년이 훌쩍 넘어 가는데 그는 살아있는 인물처럼 기사를 생산해내고 있고,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고, 책을 출간하고 있다.

또한 IT 관련 새로운 제품에 대한 평가를 할 때도 여전히 그의 이름은 비교 기준점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아직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준이 출현하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 스티브 잡스, 신화가 된 이유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는 ‘탈주술’을 통해 완성됐다고 말한다. 근대적 합리성이 강조되면서 종교와 일정 관계를 맺고 있던 주술이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성에 기반을 둔 근대정신을 강조하면서 산업혁명을 완수했다. ‘근대’라는 것이 모든 국가의 목표가 됐으며, 산업화의 길을 걸은 모든 국가는 ‘주술’을 폐기하기 바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보다 정확히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신화의 귀환’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고 북유럽 신화 등 유럽의 신화는 다시 부활하여 일상적인 이야기로 소통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프랑스의 인류학자 질베르 뒤랑은 ‘신화의 귀환’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합리적 이성이 만병통치약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과학이 신화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근대적 인간의 판단 착오일까? 답은 모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과 신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창의적으로 개척해내고 있다.

즉 과학자의 상상력은 인류를 우주에 나가게 만들었고 심지어 달 표면을 걷게 해줬다. 과거 같으면 신화의 세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신화시대에 살던 인간들이 상상력으로 사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이 만든 사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개발했다.

휴대폰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물론 ‘사람과 기계’의 대화가 가능해지고, 초보적인 인공지능이 들어간 제품들은 집안일을 사람과 소통하면서 처리하고 있다.

심지어 자동차도 사람의 목소리를 인식해 간단한 과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은 사람들의 신화적 주술성, 그리고 그에 기초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다.

바로 사물과 교감하는 인간의 주술적 감수성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처음 깨닫고 제 때에 사업으로 연결시킨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 ‘잡스’ 그리고 ‘신화’
그는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지점에서 상상력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에는 ‘인간성(humanity)’가 녹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화학자인 카렌 암스트롱은 ‘신화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신화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겪는 곤경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신화이므로, 어려운 순간에 처한 인간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한편, 때로는 진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신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 이성의 시대에 접어들어 신화는 흔히 ‘거짓의 세계’로 치부됐다.

또한 비이성적 자기합리화의 수단 정도로 대접받았다. 그러난 암스트롱은 신화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을 자극시켜 인류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순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신화는 세상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이나 기술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신화의 의미를 재삼 강조한다.

스티브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를 개발할 당시 팀원들과의 워크숍에서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본인이 평생 마음에 새긴 ‘금언’이라고 한다.

바로 이 점이 암스트롱이 말한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의 잡스적 해석이다.

인격 내지 성격적인 측면에서 그에 대한 호불호는 극면하게 갈린다.

하지만 그의 직관의 능력과 인간을 기준점으로 삼고, 쉼 없이 추구해 온 그의 과학적 상상력은 오늘도 스타트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자극제가 돼 줄 것이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