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각자도생’해야 할 새로운 한 해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해 국내 수요는 물론 해외의 수요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영업환경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지난 2015년 을미년 한 해, 용기 잃지 않고 당당하게 ‘각자도생’하신 독자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부는 몇 년째 ‘창조경제’를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지만 정작 ‘창조’의 기틀이 되는 IT산업에 대한 지원이나 스타트업에 대한 정책적 후원은 이뤄지지 않는 거친 생존환경을 쓰러지지 않고 버텨오느라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경제성장을 추동해온 국내 리딩산업(조선, 석유화학, 철강)이 중국 등의 경쟁국의 빠른 추격으로 힘겨워하는 가운데, 리딩산업의 낙수효과는커녕 콩고물 한 점 취하지 못하고 2.5%의 경제성장률에 일조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세월호와 메르스 등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허둥지둥 거리며 제대로 된 대응은 전혀 하지 못하고 뒷북이나 치는 무능한 정부를 보며, ‘내 아이라면 야단이라도 쳐서 바로 잡을 텐데’ 생각하며 속만 끓여 애간장만 녹이신 독자 여러분,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 담아 말씀드립니다.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가 있었던 을미년, 머릿속에 담고 싶은 기억보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더 많았던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잦은 송년회의 술자리 때문에 비록 배속은 쓰리지만 가슴속 만큼은 후련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총수요가 늘어날 기미는 전혀 없고, 건축시장은 초과공급을 걱정해야 하고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리딩 산업을 이을 새로운 성장 동력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고, 정부가 집행할 공공정책의 긍정적 역할마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2016년 병신년(丙申年)을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국제적 분업체계가 잘 갖춰진 동아시아 경제에서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져 ‘아시아 리스크’까지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한 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또 거친 영업환경일 수밖에 없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는 경제시스템이라 낙수효과 또한 여전히 기대할 수 없는 한 해입니다.

또한 “국민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실제가 일치하지 않은 때 정부를 불신하게 된다(‘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는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의 말처럼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지는 한 해일 가능성이 높은데다 전국 선거까지 있어 정치적 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병신년(丙申年)입니다.

그런 한 해, 다시 한 번 ‘각자도생’하여야 할 독자 여러분. 지난 한 해 당당하게 버텨냈던 것처럼 올 한 해 역시 잘 견뎌내고 이겨낼 것입니다.

바닥 모를 깊은 심연은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삶의 본질을 파악하게 하는 긍정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경제의 바닥이 어디일지 그리고 세계 경제가 언제 다시 살아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부러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 풀잎마냥 살아내면 우리 모두가 다시 삶의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원전 19세기에 쓰였다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첫 대목은 “나라의 기초인 심연을 본 자”로 시작합니다.

길가메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왕조 초기 시대인 우르 제1왕조의 전설적인 왕(재위 기원전 2600년경?)으로 수많은 신화와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입니다.

반신반인(半神半人)이어서 필멸할 수밖에 없는 길가메쉬가 영생을 추구하면서 갖은 고생을 자처합니다.

그것을 서사시에서는 ‘심연’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간난신고 끝에 불로초를 얻지만, 정작 본인은 맛도 못보고 뱀에에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필멸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을 완성시킵니다.

이 시의 9번째 행에는 “그는 먼 길을 다녀와 지쳤지만 평안을 얻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신적 죽음을 경험하고 새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깊은 데’가 바로 심연입니다.

삶의 깊은 곳으로 가라는 예수의 말은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던 베드로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게 하는 성찰의 열쇠말이기도 합니다.

‘노인과 바다’에서 작가 헤밍웨이는 쿠바의 어부 산티아고를 ‘심연’으로 보냅니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산티아고는 주변의 비아냥거림을 떨치고 진정한 어부의 모습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깊은 데’로 배를 몰아갑니다.

무서운 바다여서 어부들이 꺼리는 바다 ‘걸프 스트림’. 산티아고는 이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심연’같은 바다에서 85일째 되는 날, 거대한 청새치를 낚는데 성공합니다.

너무 커서 귀환 길에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그는 그의 자존을 회복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길가메쉬가 되어, 또는 베드로나 산티아고가 되어 2016년 새로운 한 해를 ‘각자도생’하면서 삶의 본질을 회복하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난 한해를 거뜬하게 버텨냈듯이 그렇게 이겨내실 겁니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