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경영진, 가장 큰 외적 요인 ‘기술’ 답해
스티브 잡스 이후 ‘기술’ 우호적 태도 크게 확산

‘기술은 권력이다.’ 2015년 현재를 사는 사람 중에 이 명제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기술’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술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권력으로서 기술’은 그동안의 그 어떤 ‘것’도 넘보지 못할 만큼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신을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인간 중심의 사회’로 이행했고, 곧 이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계 중심 사회’로 빠르게 이행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만 살펴보더라도 ‘기술’이 어떻게 권력의 주체로 이행하고 있는 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즉 지난 300년 동안 인간은 ‘기계’를 매개체로 한 ‘기술’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는 도구로 이를 사용해왔으며, 풍요라는 결과물을 통해 기술의 놀라운 성과를 확인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술’이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중심적인 매체로 등장하자 ‘기계’의 물신성을 숭배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전 세계의 70억 인구는 ‘기술’에 압도당하는 삶을 현재 살고 있는 것이다.

# 기업에 가장 큰 영향 미치는 요소 - ‘기술’
‘기술’에 압도당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료(Redefining Boundaries 새로운 경쟁의 도래)가 최근 IBM에 의해 발표됐다.

IBM의 기업가치연구소가 70여 개국 4200여명의 CEO 및 임원에게 ‘향후 3~5년 사이에 기업의 미래에 가장 영향을 주는 외적 요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CEO 및 임원들은 단연 ‘기술’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것도 지난 2012년 이후 4년 연속 ‘기술’이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기술’이 비즈니스 전략을 실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이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게 해 주는 출발점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들 임원의 인터뷰 결과는 당연할 것이다.

또한 최근 3~4년의 시장 동향을 보면, ‘기술’의 시장 지배력은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인도의 한 보험사 임원은 “차세대 성장 동력은 기술”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또한 덴마크의 한 임원은 “혁명전야”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불확실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경영환경을 ‘혁명’이라는 단어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른 임원들에 비해 CEO들이 더 ‘기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정보기술을 담당하는 CIO나 마케팅 담당임원인 CMO 등은 ‘시장요인’을 가장 크게 봤지만 CEO의 눈에는 그 ‘시장요인’도 ‘기술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이와 관련, IBM은 CEO가 ‘기술’을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즉 소셜미디어, 모바일, 빅데이터, 디지털 및 클라우드 등의 IT 신기술들이 단순히 기업의 업무를 보조하는 ‘정보기술’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는 도구이자,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을 반증하는 자료가 지난 2013년 IBM이 발표한 C-스위트(suite)보고서 ‘고객에 의해 움직이는 기업’편에 나온다.

이 자료에 따르면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3가지 핵심주제에 대해 CEO 및 임원들은 ▲고객의 영향력을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을 선도하며 ▲고객 경험을 유도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항목들을 기업 경영에 반영해야 조직의 전망이 보다 나아진다는 것인데, 모두 정보기술을 이용해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는 대목들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의 요구를 해결하면서 수익을 창출한 수단으로서 ‘기술’의 위상은 이미 수년 전부터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 기술우호적 인류의 탄생
한편 ‘기술’에 압도당하는 삶을 자연스럽고 긍정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데는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 지대했다.

특히 MP3플레이어를 겸한 다기능 엔터테인먼트 장비였던 ‘아이팟’에서의 성공 그리고 ‘아이폰’의 출시는 ‘기술’이 기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사람들은 잘 나가던 휴대폰 업체 노키아와 블랙베리의 고전 그리고 좌절을 목도했고 ‘매킨토시=고급 브랜드의 개인용 컴퓨터’ 정도로 바라봤던 애플이 세계 휴대폰 시장을 주도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2011년 3월 잡스가 아이패드2를 출시하면서 배경막에 보여준 ‘테크놀로지와 리버럴아츠의 교차로 표지’는 세계인의 가슴과 머리에 ‘기술’에 대한 로망을 각인시켰다.

“애플은 언제나 리버럴아츠와 테크놀로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해왔다.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항상 리버럴아츠와 테크놀로지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라는 말과 함께.

이 순간 이후 전 세계인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기술’에 대해 우호적 자세로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그 영향은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에 그대로 확산됐다.

앨런 머스크(태슬라 자동차 CEO)의 화성이주 프로젝트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는 물론 구글의 무인주행 자동차 및 인공지능 프로젝트 등에도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것을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벤처에 대한 투자인데, 신기술 기반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벤처 투자액(2014년 503억 달러, 2015년 상반기 309억 달러)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한다.

#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모든 기술과 탐구, 또 모든 행동과 추구는 어떤 선(善)을 목표로 삼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즉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의 행위 중에 하나인 기술을 선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이해하고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기술=선’이라는 등식은 항시 정답은 아니었다.

특히 전쟁이라는 인간의 또 다른 행위는 ‘기술≠선’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 중에서 가장 극명한 사례는 1차 대전의 ‘독가스’와 2차 대전에서의 ‘핵무기’였다.

이들 기술은 인간의 기술에 대한 회의로 연결됐고 그 같은 분위기는 슈펭글러와 좀바르트 등의 학자들의 저서에 반영됐다.

슈펭글러는 그의 주저 ‘서구의 몰락’에서 문명은 유기체로써 발생, 성장, 노쇠, 사멸의 과정을 밟는다고 보았고, 기술에 열광하는 서구 사회의 분위기는 기술 이데올로기가 예술, 철학, 고급 문화의 가치를 사라지게 만들어 서구를 몰락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정신으로부터 자본주의는 물론 새로운 국가체제, 종교, 과학 기술이 성장했다고 말하는 좀바르트는 이들을 무한을 추구하는 ‘파우스트 정신’이라고 불렀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물질세계를 바꾸는 기술의 힘을 상징한다.

괴테는 이 책의 2부에서 간척지를 개간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파우스트의 입을 통해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하도록 만든다.

이 말은 멤피스토펠레스에게 무한의 욕망을 추구하고 달성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팔 때 내건 ‘마지막 조건’이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파우스트는 죽게 된다는 의미다.

21세기 ‘기술우호적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기술의 힘을 강력하게 믿고 있는 또 다른 파우스트인지도 모른다.

그 힘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선에서 멀리 벗어나도록 돼 있는지 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력한 힘에 이끌리는 그런 파우스트 말이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