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으로 추진 중이던 우리은행(은행장 이광구) 메인프레임 다운사이징 IT 개발이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27일 우리은행은 이사회를 열어 차세대시스템 개발 의사결정을 보고자 했으나, 정수경 상임감사위원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감사가 이번 우리은행 차세대를 반대한 이유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2500억 안팎의 차세대 추진 비용에 대해 보다 정확한 설명과 메인프레임을 개방형 표준계열로 바꾸는데 대한 보다 명확한 설명을 ICT 지원센터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이사회 부결이후 우리은행은 이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잡음 차단에 주력하는 한편, ICT 지원센터 차세대 관련 직원들과 EY한영 컨설팅 인력 등은 은행 밖 모처에서 긴급 사업전략 수정에 나서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긴박했던 3개월,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 한몫 = 올해 들어 우리은행 이광구 행장은 1월 차세대 IT 개발 컨설팅 추진을 승인했지만, 디지털 BPR 사업 필요성을 보다 역설해 왔다.

경남, 광주은행이 지주사에서 이탈했고, 지주 구조에서 은행 단일 구조로 변경됐기 때문에 은행 단말부터 본부부서까지 업무프로세스 개선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행장은 차세대 관련 관심도 놓지 않았다.

지난해 홍역을 치른 국민은행과 같은 메인프레임 구조인데다, 연초 업무보고 과정에서 2018년 OIO계약 만료라는 점을 감안,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함께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우리은행은 6월말까지 디지털 BPR 컨설팅 완료, 7월말 차세대 컨설팅 종료 등으로 사업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 사업 추진을 계획 중이었다.

상황은 1분기가 지나면서 급변한다.

정부의 디지털 경제 정책에 따라 핀테크와 인터넷전업은행 대두 필요성이 적극 제기돼 왔고 경쟁구조 내의 우리은행이 첨병 역할을 자처, 인터넷전업은행 관련 현안 추진에 무게를 둬 왔다. <2015년 4월 6일자 “BI코리아 우리은행, 주요 IT 투자 ‘이상기류’…‘인터넷전업은행’ 전면에” 제하의 기사 참조>

5월 금융권 안팎에서도 하반기 은행권 1개사, 증권 또는 보험권역 1개사, ICT 기업 1개사 등 총 2~3개사 시범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디지털BPR, 차세대 IT 개발 등 굵직한 현안들이 뒤로 밀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6월 18일,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이 발표되면서 다소 충격적인 반전이 나온다.

은산분리 원칙을 적용하다보니 인터넷전문은행에 시중은행의 출자 지분은 5%로 제한을 받아 버렸다.

금융위 입장에서 성공률이 낮은 인터넷전문은행에 시중은행이 과도하게 간여하는 경우 발생할 리스크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는 뒷얘기부터 산업자본의 유치로 ‘가려진 돈’을 시장에 끌어들이겠다는 게 정부 원칙이었다는 설명이다.

6월 18일 발표 후 같은 달 22일 명동 은행회관 16층에서 열린 뱅커스 클럽 은행장 간담회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같은 정책에 무게를 실었고, 7월 중순 만찬자리에서도 인터넷 전업은행 시중은행 참여 제한을 재확인했다.

5월 위비뱅크 출범으로 “정부에 잘 보이려던” 우리은행 전략은 무위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컨설팅도 안 끝났는데…이사회 ‘성급했나’ = 이 과정에서 6월말~7월초 사이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IT투자 사업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

당초 우리은행은 7월 27일 이사회에서 디지털BPR을 안건으로 올리려 했다.

그러나 우리은행이 전략을 수정하면서 차세대 조기추진으로 가닥을 잡았고, 디지털BPR은 뒤로 밀리게 됐다.

우리은행 ICT지원센터는 7월말 컨설팅 완료 후 보고회를 가진 후 시차를 두고 이사회에 올리려던 계획을 변경, 경영협의회, 전산추진위 등을 일사천리로 처리한다.

아울러 우리은행 10명의 이사회 멤버 중 사외이사 7인에 대해 2번에 걸친 사전 설명회도 가졌고, 정수경 감사위원에게는 이사회가 열리기 수일전에 요약본을 전달했다.

27일 이사회에서 차세대 IT추진 부결 이후 사외이사만을 대상으로 한 이 설명회가 이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했어야 한다는 후회는 이미 늦은 다음이다.

◆KB 사태 재현되나 ‘잡음 차단’ 총력 = 이사회가 끝난 직후 우리은행은 이광구 행장을 비롯한 이사회 멤버 그리고 실무자들 모두 한목소리로 이 사안이 외부로 흘러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함과 동시에, 정 감사위원이 납득할 수 있는 보강자료를 조기 제출, 임시이사회를 갖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9일 현재까지 정 감사의 ‘차세대 IT개발 추진’ 반대의 이유는 ‘과도한 비용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과거 KB와 같이 IBM 진영의 이메일이나 로비 또는 경영진 내부 균열 흔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상임감사가 메인프레임 다운사이징을 반대했다는 표면적인 사실이 KB상황과 유사해 보인다는 게, 은행측이 외부 잡음 차단에 주력하는 이유로 풀이된다.

실제로 KB사태의 본질은 당시 임영록 KB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갈등이 IT를 통해 표출됐고, 김재열 CIO가 그 갈등을 부추겼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즉 우리은행은 경영진의 갈등이 없는 상태고,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아직은 아니지만 정 감사를 통한 IBM의 로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KB와 본질적 특성이 다르다.

◆향후 전망은…8월 임시이사회 꼭 열려야 = 그렇다고 해도, 일정상 우리은행 차세대 IT투자를 마냥 미루기 어려운 형국이다.

현재 우리은행은 컨설팅을 통해 2016년 상반기 착수, 2018년 2월 15~18일까지 설 명절연휴를 유력한 일정으로 상정해 놓고 있다.

우리은행은 물론 차선책으로 같은 해 5월 5~7일까지 어린이날 연휴도 검토 중이다. 2018년 6월 29일이 IBM 메인프레임 OIO 만료일이다.

차세대 IT 개발에 대략 24~26개월 이상 소요된다고 가정할 때, 2018년 2월에 가동하려면 우리은행은 늦어도 올 11월 전후로 메인프레임 다운사이징 본 사업에 나서야 한다.

5월 연휴로 일정을 조정하면, 늦어도 2016년 2월 전후에는 본 사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8월 임시이사회가 열리고, 사업이 본 궤도 들어설 경우 제안요청서 발송 및 접수, 평가에 1~2개월, 투입인력 등 우선협상에 1개월 등 총 2~3개월을 소비하게 된다.

기업은행이 경우, 2012년 8월 삼성SDS를 차세대 IT개발 주사업자로 선정하고 이듬해 1월까지 우선협상 기간만 총 183일이 걸린 사례도 있다.

일정상 8월 임시이사회에서 차세대 IT 투자 의사결정이 절실한 이유다. 우리은행이 과거 수년간 8월 이사회를 개최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 절실함을 더하고 있다.

KB의 경우, 2015년 IBM 메인프레임 OIO 갱신을 앞두고 2011년부터 개방형 표준계열 도입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앞으로 3년. 우리은행 IT가 새로운 변혁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시간만 끌다가 KB와 같이 울며 겨자먹기 계약을 체결할지 여부는 ‘뜨거운 2015년 8월’에 달렸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