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 vs.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의 ‘HAL’
시리, 코타나 vs. 〈그녀〉의 ‘사만다’
휴보 vs. 〈오토마타〉의 ‘오토마타’<이번호>
유진 vs.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

휴머노이드 인공지능 개발, 군사용 살상로봇?
석학들의 경고…에피메테우스의 후회 하지말자

SF영화 속 인공지능의 대세는 휴머노이드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으나 인간보다 뛰어난 지력과 체력을 보유한 강한 인공지능의 휴머노이드부터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데다 인간의 명령에 복종까지 하는 착한 인공지능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간을 돕는 존재이든 갈등하며 싸우는 존재이든 인간과의 관계(사회적 관계를 포함해)를 스토리텔링의 축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형태의 인공지능이 자연스럽게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영화 속 휴머노이드
지구의 사막화가 절정에 달한 서기 2044년. 인류의 99.7%가 사라지고, 종말이 시작되는 지구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오토마타’(2014년 개봉).

이 영화에는 만연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존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공지능 '오토마타 필그램 7000'이 등장한다.

그런데 도시의 장벽을 보수하고 지키는 이 로봇 중 일부가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3원칙을 어기는 일이 발생한다.

로봇이 로봇을 고치는 일이나 로봇 스스로가 자신을 고치는 일은 금지된 일인데, 일부의 인공지능들이 자체적인 학습을 거치면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의지’라는 것이 출현하게 돼 인간과 갈등을 빚는 ‘오토마타’ 속의 인공지능들.

인간에게 직접적 해악을 끼치지 않지만, 영화 속 인공지능들은 더 이상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지도 않는다.

올 초에 개봉한 영화 ‘채피’에서는 인공지능이 도시의 치안업무를 도맡는다.

폐기될 로봇에 고도의 인공지능 모듈을 집어넣어 태어난 ‘채피’는 도시의 경찰 역할을 하는 다른 로봇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채피’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며 학습하면서 성장하는 말 그대로 강한 인공지능이 가능한 로봇이었다.

인공지능이 갖는 감정을 잘 보여준 이 영화에서의 ‘채피’는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축복도, 재앙도 될 수 있는 군사 목적의 로봇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2013년에 개봉된 ‘로봇 앤 프랭크’에서 도우미로 등장하는 로봇은 ‘페퍼’나 ‘아시모’의 진화된 버전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여기서 도우미 로봇은 자신을 인간으로 대하는 주인에게 자신은 로봇임을 재삼 강조한다.

로봇을 의인화할 경우, 발생할 도덕적 문제 및 인간의 로봇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한 정제된 질문을 이 영화는 던지고 있다.
  

▲ 일본 혼다에서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 지난 2013년 독일 세빗에서 안내 로봇 등의 역할을 맡았다.<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 휴머노이드에 대한 동서양의 생각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영화(매트릭스, 터미네이터 등)에서 인간과 똑같이 생긴 존재들에 대한 공포감이 극대화됐듯, 실제 서양에서는 인간을 닮은 괴물을 두려워하는 프랑켄슈타인 신드롬이 존재한다.

이유는 프랑켄슈타인처럼 인간을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같은 서양의 생각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우선, 십계명에서 우상을 금지하고 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우상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비잔틴제국의 황제 레오 3세는 신에 대한 모독을 이유로 성상 숭배를 금지하고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8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년 동안 비잔틴 교회는 2차례에 걸쳐 성상파괴주의에 휩싸인다.
 
이같은 종교적 교리는 결국 문화 속에 스며들게 되어 자연스럽게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과 비슷한 존재에 대한 공포감으로 연결된다.
 
3000~4000년전 고대 그리스에서 발원한 문화에서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과 비슷한 존재는 인간을 돕거나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덜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즉 헬레니즘 문화의 전통에서는 공존의 대상이었던 휴머노이드 존재가 헤브라이즘 문화로 이행하면서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반면 동양의 정서에는 모든 사물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문화적 전통이 존재한다.

유교적 문화에서도 기(氣)는 모든 사물에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과 똑같이 생긴 존재에 대한 거부감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이같은 전통이 서양보다 동양에서 휴머노이드 타입의 로봇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발매 1분 만에 1차 판매물량 1000대가 매진된 ‘페퍼’(일본 소프트방크)나 다르파(DARPA) 로봇 챌린지에서 우승을 한 한국의 ‘휴보’(한국 카이스트) 그리고 일본의 은행 점포에 배치되어 고객을 안내하는 ‘나오’와 일본 혼다가 개발한 ‘아시모’ 등은 모두 휴머노이드형 로봇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연구목적에 맞춰 로봇을 개발하되 휴머노이드를 완성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족 보행(두 다리로 걷는 것)을 연구하는 경우, 몸통과 다리만 설계돼 있지 나머지 얼굴과 팔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과의 소통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사람의 얼굴형태 내지 상체까지만 만들어 연구한다고 한다.
 
# 다르파(DARPA) 로봇 챌린지와 휴머노이드

▲ 2013년 DARPA가 로봇 챌린지를 개최하면서 사용한 챌린지 컨셉 사진.<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그런데 2013년 예비대회, 그리고 지난 6월에 본 대회를 치른 다르파(DARPA,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 로봇 챌린지에 등장한 로봇들은 일부 참가팀을 제외하고 모두 휴머노이드 타입이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재해 재난 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주최한 이 대회에서 제시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로봇으로 휴머노이드가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인간에 의해 구축된 각종 구조물들의 조건이 사람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로봇이 해결해야 할 태스크 또한 그 조건에 준하므로 휴머노이드 타입으로 설계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며, 향후 인공지능형 로봇으로 확장 가능성 또한 크기 때문이다.
 
이번 로봇 챌린지에서 지정한 미션은 ▲자동차 운전하기 ▲계단 오르기 ▲전기공구로 구멍 내기 ▲벽돌 등의 장애물 통과하기 ▲밸브 잠그기 등 모두 8개의 미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7개국 24개의 참가팀들은 이를 고려, 이족 보행이 가능한 휴머노이드를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 다르파, 그들의 목적?
다르파(DARPA,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는 지금은 사라진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군사적 위협을 느낀 미국 국방성이 체계적인 군사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958년 설치한 기관이다.

즉 군사적 목적의 각종 신기술을 연구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출발한 것이다.
 
설립 이후 60년대 초까지는 로켓기술에 매진하여 결국 1969년 아폴로 계획을 완수해 인류 최초로 달을 밟는 쾌거를 기록한다.

NASA(미 우주항공국)가 주도한 사업이지만 관련 기술은 거의 다르파가 중심이 돼 개발을 주도한 것이다.
 
또한 1980년대 다르파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해도 적의 통신 방해를 극복하고 군사적 목적의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는데, 그것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다르파는 무인자동차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첫 대회가 2004년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서 벌어진 그랜드 챌린지였다.

당시 열다섯 대를 선별해 240Km를 달리게 한 이 대회의 결과는 참혹할 정도였다.

다르파는 다음해에 똑같은 방식의 무인차 챌린지를 개최하고 2007년에는 도시 환경에서 운행할 수 있는 무인차대회를 여는 등 21세기의 첫 10년을 무인차에 투자했다.

그 대회의 결과물을 현재 무인장갑차 등의 군사 기반 기술로 활용하고 있다.
 
이같은 다르파의 챌린지 운영 결과를 보면 이번 로봇챌린지 또한 군사적 목적의 로봇을 염두에 두었다는 의혹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 현자들의 경고
톨스토이는 ‘참회록’에서 “과학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과학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우리는 누구를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어떤 답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과학의 무의미함을 설파하고 있다.
 
그만큼 과학은 쓰임새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인문학적 성찰에 취약하다는 것을 톨스토이는 극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은 인간이 다른 동물을 압도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불과 같은 존재이다.

물론 그 불과 같은 과학은 지구 전체를 몇 번이고 파괴할 수 있는 핵폭탄으로 귀결됐고, 과학자들은 불행한 결과를 목도한 뒤 후회하는 에피메테우스의 후예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에피메테우스(나중에 깨닫는 자, 후회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가 되지 않기 위해 그동안 인공지능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스티븐 호킹 및 앨런 머스크, 스티브 워즈니악 등 세계적 석학과 경영자들 1000명이 한 목소리로 살상용 로봇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달 28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 인공지능회의에서 이들은 성명을 통해 “인공지능 무기는 화학, 핵무기에 이어 전쟁분야에서 3번째 혁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규정하고 “킬러로봇은 암살 등에 최적화된 무기로, 개발 이후 암시장을 통해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다.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의 학자들도 지난 2013년 인공지능 기술 등의 발전으로 “금세기가 인류 최후의 세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 결과 영국은 살상용 로봇의 연구 개발을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올 초 구글에 인수된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 ‘딥 마인드’도 살상용 로봇 연구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인수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현재 개발된 휴머노이드 로봇
휴머노이드 형 로봇으로 상용화된 제품이 나와 실제 생활에 적용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소프트뱅크가 지난달 발표한 ‘페퍼’와 혼다에서 개발한 ‘아시모’ 그리고 도코미쓰비시 UFJ은행에서 활용하고 있는 ‘나오’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휴머노이드가 실생활에 활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2013년 다르파 로봇챌린지 예비대회에서 1등을 기록한 ‘샤프트’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로봇이다.

물론 9개의 로봇회사를 인수한 구글의 눈에 들어 이제는 구글 제품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말이다.
 
한국의 경우는 다르파 로봇챌린지에서 우승한 카이스트의 ‘휴보’ 그리고 소형 휴머노이드 로봇의 부품 중 70%를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국내 벤처 기업 ‘로보티즈’의 ‘똘망’ 등이 로봇 관련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저변이 넓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확인받은 기업과 연구팀 정도는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휴머노이드 타입의 로봇의 강자 기업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사다. 이번 로봇챌린지에 참가하여 2등을 한 ‘아틀라스’가 이 회사의 제품이다.

▲ 휴머노이드 타입의 군사용 로봇은 물론 동물 모양의 로봇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사의 로봇 '빅독'. 미군은 이 로봇을 전쟁터에서 각종 군수 물자의 수송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 출처 : 위키 미디어>

이 회사는 이밖에도 휴머노이드 타입은 아니지만, 캐터필러가 장착돼 실제 정찰용 등으로 투입되고 있는 팻봇, 4족 보행으로 산길도 무난히 걷거나 뛸 수 있는 빅독 등을 개발한 업체이다.

물론 이 기업도 구글에 인수됐다.
 
그러나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개발되고 있는 로봇들은 다르파의 취지에 맞게 거의 군사용으로 개발되고 있어 향후 논란의 중심에 설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한편 유럽의 휴머노이드 형 로봇은 그들의 실용주의적 성향에 맞춰 서비스 로봇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ABB사의 ‘유미’와 2013년 독일 세빗에서 소개된 ‘아일라’ 등이 있다.

# 미래는?
석학들의 경고 그리고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는 공학자가 공존하는 세상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 예산을 사용하는 정부가 존재한다.

현대적 국가는 마키아벨리에서 시작된 근대적 국가관의 완성작이다.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앞서 국익이 존재할 뿐 장기적 관점의 인류의 이익은 멀게만 느껴지는 대상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의 호기심보다 호기심을 충족시켜 태어나게 될 판도라가 인류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하는 것이 과학자들이 더 이상 에피메테우스가 되지 않는 길이다.

물론 국가는 과학자들이 프로메테우스가 되는 것을 반기지 않겠지만 말이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