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법원이 하나-외환은행 합병절차를 한시적(6월 30일까지)으로 중단토록 결정한 이후 하나금융그룹(회장 김정태)이 적지 않은 내홍에 휩싸일 전망이다.

특히 6일 발표한 하나금융그룹 실적은 당기순이익 0.4% 성장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내놓으면서, 김정태 회장 퇴진에 대한 안팎의 목소리까지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법원이 외환노조가 제출한 ‘합병중단 가처분’ 신청 인용 발표 이후, 5일까지 관망하던 하나-외환은행 IT통합은 6일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하나은행 차원에서 계약하고자 했던 20여개 업체의 계약을 중단했다. 향후 그룹의 정책 방향에 따라 IT통합 지속 여부를 재검토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2월 5일을 기준으로 하나은행이 IT통합 ‘무기한 연기’를 선언한 것으로, 6일에는 하나은행 일부 간부들을 중심으로 향후 일정에 대한 워크샵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직접 계약이 20여개, 하나I&S를 통한 협력사 10~20개 업체까지 합하면 적어도 30~40여개 업체 계약이 무산된 것이다.

9일부터 투입하고자 했던 700여명의 인력이 졸지에 일자리 기회를 잃게 됐다.

물론 일부업체들은 계약을 만료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 사업자인 ‘은행’이 계약 이행 불가를 통보함에 따라 향후 대응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만 남은 상황이다.

IT통합 중단의 의미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하나금융그룹은 5일 금융위원회에 신청한 ‘하나-외환은행 합병 예비인가’ 신청도 철회했다.

즉, 5월까지 예비인가 승인을 받아야 두 은행 IT통합 테스트가 가능했던 시나리오가 ‘예비인가 신청 철회’로 1차적인 IT통합테스트 자체가 무산됐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추진된 일정이 그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각 업무의 단위테스트는 가능하지만, 본질적 의미의 데이터 통합 이후 거래 및 업무간 연계 그리고 영업점 테스트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나금융그룹이 당초 예정했던 10월 통합 IT 구현을 불가능하게 됐고, 이를 2~3달 연기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정으로 예상된다.

한편, 하나, 외환은행 안팎에서는 ‘외환은행 IT업그레이드’ 재추진이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두 은행 IT통합이 아닌 ‘외환은행 IT업그레이드’를 빌미로, 실질적인 IT통합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예를 들어 현재 추진한 IT통합 방향이 하나은행 애플리케이션 구조에 외환은행 데이터를 마이그레이션 하는 방식이었다면, 외환은행 애플리케이션 구조를 하나은행과 유사하게 만들어 놓는 작업은 법적인 제재 없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은행과 하나은행이 통합하던 당시와 비슷하게, 데이터만 통합할 수 있게 ‘하나의 IT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외환은행 노조의 우려다.

외환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주사에서 IT통합 중단을 선언한 상황이 아니다 보니, 아직 그 문제를 놓지 않고 있다. 여전히 금융위원회 진정서 내용은 유효하다. 절차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감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특히, 하나I&S를 중심으로 IT통합이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다. 서울 스퀘어에 있는 직원들이 외환은행 본점으로 다시 이전해 와야 한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실적저조…누구 탓? = ‘하나-외환은행 합병 중단’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이틀후, 하나금융그룹은 연결재무제표를 적용한 당기순이익 9377억원 시현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 6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총자산 391조 6000억원의 하나금융그룹은 신한금융그룹(2조811억원), KB금융그룹(1조 4007억원), 우리은행(1조 2140억원), IBK기업은행(1조320억원)보다 낮은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환은행 관련 당기순이익은 전년대비 17.8% 감소한 3651억원을 시현했다고 발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외환은행 노조 관계자는 “실적을 축소한 의혹이 있다. 지주사는 이를 빌미로 합병의 당위성을 보다 내세울 수 있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환은행 노조가 발표한 수년간의 은행 실적을 풀이해 보면, 하나금융그룹 인수 후 실적 저조가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그림 ‘최근 10년간 외환/하나은행 수익력 등 비교’ 참조(출처:외환은행 노동조합)>

▲ 그림 ‘최근 10년간 외환/하나은행 수익력 등 비교’ 참조(출처:외환은행 노동조합)

심지어 우리금융그룹이 광주, 경남은행 ‘간판’을 바꾸지 않고도 고성장을 이뤘던 과거에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정태 회장 퇴진 가시권에 들어오나 = 지주회사 체제의 금융그룹 출범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책임성 강화와 함께 ‘주주 중심 경영’이라는 화두를 안고 있다.

IBK기업은행에도 밀리는 형국의 최근 하나금융그룹의 이같은 실적은 결국 현 경영진 실정으로 귀결된다는 게 금융계 안팎의 시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하나금융그룹 내 하나, 외환은행은 보편적 리테일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 만큼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데 이는 ‘조직안정’을 근간으로 해야 수확할 수 있는 산물이다. 무리한 외환은행 통합을 기치로 내세우고, 안살림을 등한시한 결과”라고 일갈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 안팎에서는 4일 ‘하나-외환은행 합병 중단 가처분’이 인용된 이후, 하나금융지주가 준법감시 책임 임원까지 전격 교체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유다.

김정태 회장이 실적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저조한 실적과 무리한 합병추진 실패 그리고 IT통합 백지화. 중요한 정책 수행 실정에 대한 현 경영진의 책임있는 ‘거취’가 필요해 보인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