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DB암호화 솔루션의 성능이슈가 은행권 DB암호화 도입 발목을 잡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국내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의무사항 DB암호화 시행시기에 대한 본격적인 재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1차적인 재검토 논의는 현재 은행연합회가 시중은행 의견을 종합해 ‘DB암호화 의무시행 기간 연장’을 골자로 안정행정부에 정책제안 형식을 빌어 진행될 예정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2014년, KISA(한국인터넷진흥원)와 함께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설문을 가진 결과, DB암호화 적용 대상이나 은행의 규모 특성 등을 감안한 적용시기 조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며 “설문결과, 보다 향상된 DB암호화 기술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유예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작년 하반기 본격 시행된 개인정보보보호법상 은행권 DB암호화 의무시행 기간은 2016년 1월 1일부터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상 DB암호화는 “암호화 적용 대상 및 대상별 적용시기 등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개인정보의 처리 규모와 유출 시 영향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하고 있어 아직 그 범위가 명쾌하지 않다는 난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올해 연초 대통령령으로 각종 시행령이 마련된다 해도 연내 은행권 고객식별번호를 전면적으로 DB 암호화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같은 법적 난제에 덧붙여 현실적인 문제도 DB암호화 연기배경으로 꼽힌다.

현재 은행권은 개인정보보보호법에서 요구하는 고객식별번호, 즉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DB암호화 구축 실적은 미비하거나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

이유는 DB암호화 도입 이후 급격하게 속도 등이 떨어지는 서버 성능, 각종 비용 상승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 거래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며 “모 대형은행의 경우 DB암호화 대상 주민등록번호를 추산한 결과 적어도 1조건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1조건에 대해 DB암호화를 시행하고, 기존 주전산시스템 등 각종 업무시스템 성능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간 IT인프라 투자예산의 60% 이상이 추가로 소요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가령, 연간 1000억원의 IT인프라 투자예산을 집행해 온 이 금융사는 연간 적어도 600억원 이상 추가 투자가 발생하고 이 투자금액은 연간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드웨어 인프라에 대한 비용상승 뿐만 아니다.

현재 시중은행이 검토하는 방식은 주로 API 방식인데 이를 적용할 경우,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CPU 증설이 30~40% 이상 필요하고 라이센스(OS, DBMS, 각종 애플리케이션, 암호화솔루션) 비용까지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몇몇 시중은행은 올해 DB암호화 예산조차 아예 편성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고객 식별번호와 매핑하는 킷값을 주민번호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규정한 조항은 고객식별번호 원천데이터에 대한 암호화를 요구하고 있어 ‘고객식별번호 킷값 매핑’ 대안은 각 은행별 업무처리 방식에 불과하다는 게 당국의 지적이다.

소위 백본시스템 내부에 있는 원 소스데이터에 대한 근본적인 암호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은행권이 내세우는 DB암호화 적용 최종 기간은 2018년 이후로 추정된다. 약 2년의 유예를 추가해달라는 요청인 셈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대다수 은행들이 포스트차세대 IT 개발을 준비 중이다. 새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DB암호화를 적용할 경우 성능 등 이슈를 해소할 수 있고 그동안 DB암호화 솔루션들이 보다 향상된 기술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은행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더해 공공부문도 DB암호화 의무기간 연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의 경우, DB암호화 대상 주민번호만 200억건 이상이다. 안전행정부도 110억건이 넘는다. 정책추진 실무부처까지 DB암호화 구축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고객식별번호를 대상으로 추진되는 DB암호화 의무기간 유예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