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호스팅 또는 OIO 재계약 결론 쉽지 않을 듯

KB금융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이 경징계를 받았다. 사실상 ‘관치’가 ‘관료’ 중징계를 피해간 셈이다.

지난 24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는 이같이 결정했고, KB금융지주 김재열 CIO, 문윤호 IT기획부장, 국민은행 조근철 IT본부 상무, 정윤식 전략본부 상무 등은 중징계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이같은 징계 수위가 결정됐지만, 국민은행 및 KB카드 주전산기 교체 해법은 도출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동안 금융권이 제재심 결과를 기다린 이유는 감독당국의 판단을 통해 전산갈등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 그 책임을 묻고 리호스팅 또는 OIO 재계약 등 방향성을 정하기 위한 제3자의 조정을 기다린 성격이 강하다.

회장, 은행장은 경징계로 끝나고, 오히려 임원들을 중징계 한 상황에서 KB 조직의 갈등은 보다 격화될 것으로 보이고 그 갈등은 예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BI코리아>는 KB 전산갈등 관련, 제재심 결과 발표 이후 조직 내부 갈등에 대한 전망과 함께 IT부문의 향방, 제3지대 필요성 등을 분석해 봤다.

◆내분 격화, IT부문까지 확대될 듯 = 회장, 은행장이 살아남은 상황에서 임원들이 중징계를 받은데 대해 은행 내부조직의 반발은 거세게 나타나고 있다.

지주, 은행 노조는 회장, 은행장 동반퇴진을 요구하며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고 있고, 일각에서는 채널간 갈등까지 나타나는 상황이다.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후배들을 중징계 시키고 자신들만 살아남겠다는 경영진이 무슨 자격이 있냐”며 “회장, 행장 모두 동반 퇴진하고 은행원 출신의 인사로 재편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은행 다른 관계자는 “주택, 국민 합병이후 줄곧 옛 주택은행 출신(2채널)들이 전산부문을 장악해 왔다. 은행 내부에서는 2011년부터 1채널(옛 국민은행) 출신들이 IT그룹을 장악한 이후 이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보면서 채널간 갈등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올 하반기 인사에서 조근철 CIO 퇴진이 가시권에 들었고 그 자리에 옛 주택출신 임원을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채널간 갈등 이면에는 현 노조 집행부가 옛 주택출신을 중심으로 한 IT부문 재편 움직임을 시도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국민은행 다른 관계자는 그러나 “현 갈등의 원인이 김재열 CIO의 과도한 개입에서 비롯된 만큼 은행 내부 갈등을 부추기기 보다 김 CIO 퇴진 이후 IT조직 재정비, 주전산기 해법 도출 등 합리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즉, 은행, 지주 모두 임영록 회장과 김재열 CIO를 이번 사태의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금융인 중심으로 새판을 짜야한다는 주장이다.

김재열 CIO의 대응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금융감독원 소명을 위해 자문을 받았던 A법무법인을 통해 징계 부당성을 전제로 한 법적인 대응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전산기 교체 전망은 = 공은 이사회로 넘어갔다. 주요 언론에 따르면 추석연휴 이후 주전산기 교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경징계 통보를 했지만, 지주 보고서나 은행 내부 보고서에 문제가 있다는 의중을 피력한 만큼 이사회가 기존 ‘리호스팅’을 전제로 한 의사결정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와 이건호 행장, 정병기 감사 측이 어떤 형식으로 든 화해 제스처를 통해 사태를 진정시키고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은행 내부에서는 ‘예산편성 과정에 감독당국 개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두 진영이 감정의 골부터 없애는 게 주전산기 교체 관련 합리적 판단의 전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친 임영록 색깔의 현 국민은행 이사회가 이건호 행장 손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은 상황.

행장이 이사회 결정을 뒤집겠다고 시도한 사실에 대한 불신을 비롯해 IBM 공정위 제소건이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두 진영의 대타협과 양보만이 남은 것이다.

◆제3지대 필요성 제기…KB데이타시스템 역할론에 ‘주목’ = 현 KB금융 주전산기 교체 대상은 은행 메인프레임과 KB카드 메인프레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KB카드 CIO를 겸임중인 김재열 지주 CIO는 이 카드 CIO 겸임을 이유로 주전산기 교체 문제에 깊게 간여해 왔다.

은행 CIO, 지주 CIO 모두 중징계를 통보 받은 상황에서 리호스팅이 결정될 경우 사업 추진은 더디게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사실상 퇴진이 예고된 두 CIO가 리호스팅이던 OIO 재계약이던 ‘총대’를 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하반기 인사에서 CIO가 교체될 경우 적지 않은 기간의 공백도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KB데이타시스템’ 역할론에 주목중이다.

국민은행 이사회에서 사업방향을 결정하면, KB데이타시스템이 나서 계약 대행 등 일부 업무위탁을 받아 처리하는 것이다.

리호스팅으로 결정될 경우, 지주, 은행, 카드사 모두 KB데이타시스템에 사업을 위탁하고 3개 자회사는 감독업무를 맡는 형식이다.

실제로 KB데이타시스템은 리호스팅 추진을 염두에 두고 적지 않은 인력도 확보한 상황이다.

은행 일각에서도 “더 이상 IBM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며, 리호스팅 후 IBM과의 완전한 결별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SK C&C가 지난 5월 최종 제안한 2600억원대 금액도 이같은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2600억원 규모의 투자라면 주전산기 교체에 덧붙여 얼마나 연장해야 할지 모르는 IBM 메인프레임 추가 비용까지 충분하다는 게 은행 안팎의 시각이다.

과거 제안과정이 현재 무효화된 상황에서 재입찰에 나서겠지만, SK C&C측과 김재열 지주 CIO의 불필요한 친밀도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추론도 있다.

OIO 재계약이 추진될 경우, 계약 위탁 주체로 KB데이타시스템이 나서고, 3개 자회사는 일체 간여하지 않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이같은 KB데이타시스템 역할론이 나온 배경은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 지주나 은행의 간여를 최소화하고 부정의 소지를 제거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관측이다.

국민은행 이사회가 어떤 결정을 해도,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표출된 은행, 지주사간 갈등 그리고 ‘IT직원들이 갖는 상실감’, 사업추진 난맥상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