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의 잦은 교체와 구조조정 등으로 침체에 빠진 기업문화를 다이내믹하게 만들겠다. 또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은 정리하고, 이미 선정한 18개의 타깃 고객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펼치겠다."

지난 6월 한국후지쯔의 새 사령탑을 맡은 김방신 사장이 20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출사표다. 김 사장은 “후지쯔는 한국에서 인지도도 낮고 시장점유율도 높지 않으며 독특한 장점도 갖고 있지 않다”고 진단하고, 앞으로 특히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변해야 한다” 변화와 혁신 TFT 운영 = 김 사장은 한국후지쯔의 사장으로 부임한 첫날, 외부에 파견나간 직원을 찾아나서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어 곧바로 ‘변화와 혁신을 위한 TFT’를 조직했다. 김 사장의 이러한 행보는 직원들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업문화의 변화를 적극 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사장은 “한국후지쯔가 변해야 한다는데 대부분의 직원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35년간의 전통적인 기업문화가 금방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얼마나 빨리 프로세스화 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어 변화에 힘을 싣는 방안으로 “상명하복식의 경영은 지양하며, 외부 인력의 수혈 없이 현재 260여명의 임직원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정리할 것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대표적인 예가 노트북이다. 그는 “이미 프로젝터 등 하드웨어 사업을 많이 정리했다. 노트북 사업은 현재 절대 수익성을 낼 수 없는 구조를 안고 있다”면서 앞으로 잠정적으로 노트북 사업을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AS는 지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국후지쯔는 이처럼 경쟁력없는 사업은 정리하는 대신 솔루션 사업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한국후지쯔가 내세우는 솔루션은 유통, 일부 금융, 병원, 통신 등 업종 솔루션을 비롯해 서버, 스토리지 등 인프라 솔루션이다. 이 가운데 POS 등 유통 솔루션은 시장점유율 1위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또 전략적으로 x86 서버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본사의 방침에 따라 국내에서 시장점유율 5% 미만에 머물러 있는 이 분야 사업을 강화해 10% 수준으로 끌어 올릴 방침이다.

◆비 경쟁력 사업 정리, 유통 등 솔루션 사업 강화 = 한국후지쯔는 이러한 솔루션의 공급 방식으로 그동안 고집해온 직접판매를 지양하고, 간접판매를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김 사장은 “이미 올해부터 간접판매를 강화해 지난해까지만 해도 85%를 차지했던 직접 판매 매출 비중이 지금은 15%로 떨어졌다”고 소개했다. 현재 간접판매를 담당하는 채널은 모두 60여개로 Tier 1인 총판 5개, Tier 2 50여개, 그리고 특정 고객을 담당하는 밸류 파트너 5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 사장은 “2009 회계연도가 시작된 4월부터 7월까지 이런 채널들이 진행한 상담건은 400여건에 이른다”면서 “앞으로 100% 간접판매 방식으로 전면 전환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한국후지쯔는 매출 극대화 방안으로 이러한 채널 영업 외에 특정 타깃 고객을 선정해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과거 업종별 조직을 올해에는 고객별 조직으로 전환하고, 그것도 18개의 특정 고객을 선별해 공략하고 있는 것. 한국후지쯔는 올해 들어 고객별 조직인 어카운트 사업본부, 제품을 담당하는 프로덕트 솔루션사업본부, 매니지드 서비스 사업본부 등으로 조직을 개편한 바 있다.

◆IT 업계 룰 바꿔야 = 김 사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IT 업계가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온 문제들을 지적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오랜 자동차맨이자 비 IT맨인 시각에서 볼 때 IT 업계는 “경쟁과 협력의 룰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라는 게 그가 주장하는 골자이다.

“일부 스포츠에 체급이 있으며, 골프에도 핸디캡이 있다. 이는 바로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다. 하지만 IT 업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누가 적이며, 동지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이합집산이 무척 심하다. 또 대형 업체가 중소업체와 경쟁하고, SI 업체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경우 완성차 업체가 부품업체와 싸우지 않는다.”

이처럼 IT 업계의 풍경에 의아심을 품고 있는 그가 왜 IT 업계로 이직했으며, 그것도 후지쯔인지 궁금했다.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구원할 산업은 바로 IT라고 생각했다. 또 개인적으로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현대자동차 재직 당시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와 4~5년간 제휴 업무를 추진했던 경험이 후지쯔를 선택한 배경이 됐다.”

비 IT 출신으로 IT 업체의 운영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IBM을 구원한 거스너는 과자 회사 사장 출신이었다”면서 비 IT 경력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자동차 업계에 몸담은 김 사장의 이력 때문인지 앞으로 한국후지쯔가 자동차와 IT를 접목한 새로운 상품 개발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김 사장은 “내비게이션이나 텔레매틱스 등 통신기술과 자동차 산업간의 융합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면서 “현재 본사에서는 IT 기술과 자동차를 융합한 새로운 솔루션 개발을 연구 중”이라고 소개. 하지만 언제 어떠한 솔루션을 한국에 선보일지는 지금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24년간 현대자동차에 재직한 비 IT 인물 = 김 사장은 현대자동차에 23년 6개월간 재직했던 비 IT 인물로 IT 다국적 기업의 수장으로 선임됐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김 사장은 1959년생으로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경영전략, 마케팅, 홍보, 연구개발, 해외 비즈니스 분야의 주요 요직을 거쳐 최근 현대자동차 북경현대기차유한공사 부총경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