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는 가정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if’ . 과거 어떻게 했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 것이라는…

요즘 국민은행 ‘스마트사이징’을 보면, 하기 싫어도 이같은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국민은행이 차세대를 가동한 시점은 지난 2010년. 불과 만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시스템 구조가 또 바뀐다. 당시 전산센터를 포함 국민은행이 쏟아부은 돈은 5000억원을 상회한다.

소위 ‘계정계’ 중심의 투자가 10년도 지나지 않아 또 이사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스마트 사이징’을 위해 투자되는 예산만 대충 2000억원 안팎이고, 이 프로젝트 앞뒤로 얼마가 더 투자될지 예측 불가능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IBM OIO 계약을 진행해도 비슷한 금액이 투자될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국민은행이 검토하는 ‘리호스팅’ 방식은, 새로운 차세대를 예고하기 때문에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2000억원대 안팎이지만, 향후 3~4년안에 또 수천억원을 써야하는 가능성 때문이다.

과거 국민은행은 2010년 가동한 차세대 결정 전 얼마나 많은 성능테스트(BMT), 개념검증(PoC)을 해 왔던가.

기자가 기억하는 일정만 봐도, 거의 2~3년에 한번꼴로 업체들을 불러 개방형 표준계열 도입을 검토해 왔다.

물론, 2007~2008년, 국민은행이 메인프레임 유지 결정에는 많은 이유가 그리고 뚜렷한 명분이 있었다.

잦은 장애, 엄청난 양의 거래처리, 막대한 프로그램 본수, 비용효율성 등 은행이 과거 10여년간 ‘개방형 표준 도입’을 위해 검토한 자료만 해도 5톤 트럭 한 대분은 족히 될 것이다.

최근 ‘스마트사이징’ 역시 이같은 많은 명분과 이유를 갖고 있지만, 국민은행 그리고 은행 IT본부의 자신감은 왠지 빈약해 보인다.

리호스팅 비용이나 메인프레임 유지비용에서 차이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일만큼’ 계정계 구조를 바꿔 보다 나아지는 시스템 구조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은행 IT본부 직원들 역시 ‘스마트사이징’에 시큰둥이다.

정보보안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은행 입장에서 여전히 계정계 투자에 막대한 비용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2014년 현 시점의 은행 투자 우선순위가 재설정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덧붙여 이건호 행장은 ‘스마트 사이징’ 명분을 얻기 위해 고작 “IBM 제안수준의 가격을 내리라”라는 오더만 했을 뿐, 이 사업의 중요성 그리고 향후 3~4년 안에 국민은행이 짊어져 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과거 2007~2008년, 무책임하게 ‘메인프레임’ 결정을 했던 전철과 같은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데도, 당장 “무엇 때문에 스마트사이징을 추진해야 하는지” 은행장 스스로의 철학이 빈약해 보인다.

덧붙여 의사결정의 사실상 핵심조직인 IT본부는 “우리는 이 사업의 추진여부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 충실히 이행하는 조직”이라며 ‘가장 큰 책임을 가장 정교하게’ 비켜가고 있다.

기자가 메인프레임을 유지하라고 애기할 명분이나 이유는 없다. 밑도 끝도 없이 ‘수구꼴통’으로 몰린 기자 입장에서는 가치중립이 최선의 명분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지금까지 놓치지 않는 기자의 생각은 “그 막대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은행 여타 직원들의 노력을 한번쯤은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가치관이다.

국민은행은 최근까지 시중은행 중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았던 은행이다.

<김동기 기자>kdk@bi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