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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계학회 40년, 그리고 김준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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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8.03  13: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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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57차 'ISI 국제통계대회' 참관기
 - 인구동태 통계의 문제, 그리고 노후소득보장 체계
 - 춤추는 여론조사
 - 현실과 동떨어진 소비자 물가지수
 - OECD 세계포럼의 그늘
 - 인구 주택 총조사에 숨어있는 문제
 - 국가통계 체제를 쇄신하자
 

   
한국통계학회장/고려대 교수

한국통계학회는 1971년 12월 17일, 연세대학교에서 필자의 대은사인 김준보 선생님께서 앞장서 창립한 학술단체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언 40년, 필자는 2010-2011 2년간 학회 회장을 맡게 된 것이니, 2011년 학회 창립 40주년 기념행사를 치루어 내야 하는 영광된 짐을 지게 된 것이다.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니, 1971년 초 고려대학교에서 김준보, 백운붕, 윤기중 선생님을 비롯한 7명의 교수가 학회창립을 발기하였으며, 그해 겨울 47명의 호해지사(湖海之士) 두루 모여 한국통계학회 창립총회를 가졌다고 되어 있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기 삼 년 전의 일이다.

이제 한국통계학회는 천 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관심분야가 비슷한 회원들이 학문적 공통 주제를 토론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연구주제별로 9개의 연구회를 두고 있으니, 조사통계연구회(1988년 발족), 통계교육상담연구회(1988년), 통계계산연구회(1988년), 공업 및 기업정보통계연구회(1990년), 생물통계연구회(1990년), 분류연구회(1993년), 국가통계연구회(1995년), 베이지안통계연구회(1999년), 스포츠통계연구회(2007)가 그것이다. 9개의 연구회는 전문 서적의 발간, 심포지움, 포럼 개최를 통하여 이 땅의 학문적 발전을 모색하며 또한 실천하고 있다. 

2011년, 창립 40주년 맞는 통계학회
또한 통계학회는 세가지 학술지를 정기적으로 간행함으로써 이 사회의 지적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데, <JKSS>(Journal of the Korean Statistical Society - SCIE, Elsevier B.V. 출간)는 연간 4회, <응용통계연구>와 <한국통계학회논문집>(학술진흥재단 등재학술지)은 각각 연간 6회 발간되고 있다.

최근 한국통계학회는 학회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이를 기리기 위한 여러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2011년 7월 1일-2일 양일간 웨스턴조선호텔(부산)에서 한국통계학회, 통계청, 한국은행 공동 주최로 국제학술대회 ‘2011 KSS International Conference on Statistics and Probability -The 4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Statistical Society가 열리게 된다. 국제학술대회는 공동 주최 기관인 한국은행 총재와 통계청장의 기조 연설로 시작된다. 이미 16명의 초청연사를 확보하였는데 그 면면은 가히 등장 자체가 놀랄만한 인물이라고 자부할 만 하다. 세계 최대의 국제통계학회인 前 IMS 회장을 지낸 프린스턴대 Jianqing Fan 교수, 하바드대 Xiao-Li Meng 교수, 펜실베니아 주립대 Runze Li 교수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통계학회 창립 40주년 기념 국제학회에 초청강연자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한국통계학회 40년사’ 편찬을 위하여 수개월 전부터 ‘한국통계학회 40년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편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학회 창립 4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2011년 5월 27-28일 양일간 KAIST에서 열리게 되는데 그 시점에 선보이게 될 특별프로그램은 ‘통계학의 과거-현재-미래’ 대주제 하에서 국내 선도그룹 학자들이 연구주제별로 통계학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그것을 살펴보며, 미래 통계학의 흐름을 조망하게 된다. 또한 40주년 기념 학술대회 위성회의(Satellite Meeting)가 되는 국가통계포럼 ‘국가통계의 현안과 대응’이 학술대회 하루 전인 5월 26일 통계센터에서 열리게 된다. 국가통계포럼의 아젠다는 결측치 대체(Imputation), 패널데이터(Panel data), 인구동태통계, 국가통계의 상용화, 마이크로데이터, 국가승인통계에 대한 통계품질진단 등이다.

지금 한국통계학회 임원 및 소관 위원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교수들은 삼복 더위를 무릅쓰고 학회 기념사업 준비에 골몰하고 있다. 오늘날 통계학의 활용은 특정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모든 영역에 망라적(網羅的)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지하는 바 통계학은 데이터를 다루는 학문으로서 데이터에 내포된 정보를 분석, 일반화하여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기반 학문인 동시에 서비스 학문이다. 오늘날 그 응용분야는 6T 분야(정보기술, 생명공학기술, 나노기술, 환경에너지기술, 우주기술, 문화기술)를 포함하여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1세기는 통계학의 세기'
통계학의 응용분야를 미시적으로 더 들여다 보자. 정부의 각종 승인통계를 포함하는 국가통계, 사회여론조사, 마케팅조사 등 각종 조사통계, 기업경영을 위한 정보분석/시스템개발/마케팅 효율화(CRM 등), 경기예측, 판매량 예측 등 다양한 시계열 분석 및 수요예측, 품질관리를 포함하는 식스시그마 경영활동, 암진단 키트 개발 및 마이크로어레이 분석 등 생물정보학, 신약개발을 포함하는 의약학/보건학, 경제/사회/교육/복지 등의 분야를 포함한 사회현상 계량화 모형 개발, 수능표준점수 개발, 문항의 신뢰도/변별도 등을 포함한 교육통계 및 방법론, 환경통계를 중심으로 한 공간통계, 우주탐사/기상데이터/지진예측/산불예측/교통패턴 파악 등에 대한 다양한 분석 등 실로 통계학의 활용 영역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을때 빌게이츠가 갈파하였다. “21세기는 통계학과 생명과학의 세기이다”.

근래 필자는 학회창립 40주년 과업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면서 가슴 떨리는 기분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한국통계학회 초대회장을 지내신 대은사 김준보 선생님 생각이 자로 피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1915년 출생이시며 2007년 12월 세상을 버리셨으니 천수(天壽)를 누리신 분이다. 필자는 2007년 스승의 날(5월 15일)을 앞두고 <고대신문>의 요청으로 졸고를 남기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선생님 이야기’이다. 글은 이러하다.

선생님은 나의 앞에 놓여 있는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니까 80년 4월의 기억이다. 필경 이 나라 현대사에서 크나 큰 질곡(桎梏)의 시기로 기록될 그때, 대학은 시국문제로 죽 끓듯 하고 있었다. 80년 1학기는 선생님이 정년퇴임하시는 학기였다. 서생(書生)은 당시 졸업반 학생으로서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를 수강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학문과 교육에 대한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으니, 전시 피란 중에도 연구집필을 계속하여 1954년 <현대통계학>을 출간하셨을 정도이며, 정년퇴임 이후에도 다수 저술을 저작하셨다. 학사(學事)에 대한 태도는 강직(剛直)하고 완고(頑固)함이 널리 알려져 서생의 재학시절 친구들의 일반적 경향은 가급적이면 선생님을 피해 사는 길이 잘(?) 지내는 길이라고 여기는 지경 이었다. 이를테면 한 학기 출석 호명에서 세 번을 빠지게 되면 그 학기 학점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으며, 학점 평가의 가혹함은 추상(秋霜)과 같으니 수강생의 반수 이상은 항시 재수강생이었다.

개인적인 생활면도 그와 같아서 30여년 교수직에 봉직하시는 동안 휴강이 없었다 함을 기록으로 자타에 표방하고 있었다. 평소 연구실의 모습을 훔쳐 볼 양이면 고대 희랍의 아르키메데스가 적군이 조국에 침입한 것도 모르고 기하학의 문제해결에 골몰하였다던 바로 그 모습에 다름없었다. 

대리석 같은 존재 '김준보 선생'
80년 4월 어느 날이다. 그날도 시국 시위가 학교를 지배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배회하다가 선생님의 수업시간이 되어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날도 선생님은 단 두 명의 학생을 앞에 두고 시종일관 강의를 행하셨다. 강의 중 더러 먼 하늘을 바라 보셨다. 시위대 함성이 수업진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75년 여름의 기억이다. 그해 8월, 선생님의 환갑을 기념하는 세 학회 연합세미나가 준비되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국농업경제학회, 한국통계학회,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두루 역임하시고, 또한 학술원 회원이시니 선생님의 학덕(學德)과 사회적 공헌을 기리는 대규모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서생은 학과 학생대표 노릇을 지낸 탓에 행사를 준비하는 교수님과 선배들을 거들고 있었다.

세미나를 불과 며칠 앞두고 선생님께서 잠적하셨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게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평생을 몸담아 오신 대학이 사회 격변기에 몸살을 앓고 있는 시절에 본인을 위한 그러한 행사가 시의적절하지 않다 하시며 아무도 몰래 국외로 떠나신 것이었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선생님의 행방에 대하여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서생이 대학에 직장을 얻은 80년대 후반의 기억이다. 춘천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고 상경 길에 선생님을 모시고 기차에 오르게 되었다.

- 어떻게 지내십니까
- 책 읽고 지내지
- 어디, 강의 나가십니까
- 헝, 이제 은퇴해야지
- 헝, 내 교수자리 많이 더럽히지 않았나

청량리역에서 신당동 댁으로 갈 택시를 잡아드리려는 서생을 뿌리치며 경로우대증을 흔드시며 지하철 구멍으로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가 쑥 사라졌다.

선생님은 배우는 사람이 지녀야 할 좌우명(座右銘)으로서 겸손, 확신, 내적 투쟁의 세 가지를 강조하셨다. 과연 그러하지 아니한가? 선생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대학에 발을 묻고 젊음을 대하며 살고 있는 서생은 과연 겸손하며, 과연 확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과연 학문적 성숙을 이루어 내기 위한 내적 투쟁에 충실하고 있는 것인가? 자문(自問)하고 자문하는 것이다.

무릇 ‘청(靑)이 남(藍)에서 나되 남(藍)보다 낫다’ 하는 말이 있다. 서생은 선생님에게 ‘진청(眞靑)’이 못되었음은 물론이요, 학생들에게 ‘진남(眞藍)’이 못된 것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니 선생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고대신문 1562호, 2007년 5월 14일).

김준보 선생님의 주요 경력은 이러하다. 행정공무원(1941~1945),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1946~1962), 전남대학교 총장(1962~1965), 전북대학교 명예농학박사(1964. 3),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교수(1965~1980), 정년퇴임(1980. 8), 한국농업경제학회 초대회장(1957~1970), 한국통계학회 초대회장(1971~1973), 한국경제학회 회장(1978~1980), 한신대학교 대우교수(1982~1987).

후학에 귀감되는 선생의 발자취 
김준보 선생님께서 세상에 남기신 저서는 이러하다. <농업경제>(한국검인정도서/1947), <토지정책론要綱>(삼일문화사/1948), <현대통계학>(민중서관/1954), <추측통계>(민중서관/1955), 일반경제학(박영사/1958), 이론경제학(박영사/1961), 농업정책(공저)(박영사/1962), <농업경제학서설>(고대출판부/1966), <경제통계론>(일조각/1969), <한국자본주의사 연구 Ⅰ>(일조각/1970), <수리통계학>(공역)(고대출판부/1971), <한국자본주의사 연구 Ⅱ>(일조각/1974), <산업연관분석론>(법문사/1975), <한국자본주의사 연구 Ⅲ>(일조각/1977), <한국경제와 임금구조>(고대출판부/1979), <현대경제학서설>(법문사/1981), <경제학 기초論考>(고대출판부/1986), <토지문제와 지대이론>(한길사/1987), <경제학의 기초>(한길사/1991), <한국근대경제사 특강>(연대출판부/1993), <가치와 가격轉化論 Ⅰ>(신성인쇄상사(自費출판)/1996), <가치법칙의 재인식 Ⅱ>(신성인쇄상사(自費출판)/1998), <신가치論考>(신성인쇄상사(自費출판)/2001)

선생님은 82세에, 84세에, 87세에 이르도록 자신의 학설을 세상에 알리시고자 자비출판을 강행하신 것이다. 선생님은 93세로 세상을 버리는 타계하시던 순간에도 선생님 머리맡에는 양자역학 관련 서적이 딩굴고 있었다. 현대 통계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칼 피어슨(K. Pearson)의 명저(名著) <Grammar of Science>의 마지막 챕터 역시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으로 끝난다.

제 20대 한국통계학회장으로서 학회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요즈음, 학회 초대회장을 지내신 대은사 김준보 선생님 생각이 간절하고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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