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덕목 ‘인내’ - 지난호
◆지혜와 숙고하는 삶 - 이번호
◆도전과 목표관리 없는 성공은 없다
◆초심만큼 중요한 마무리

눈앞의 위험과 쾌락 무시해야 올바른 판단 가능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에서 신들은 미래를 완벽하게 내다보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선 제우스를 포함한 신들이 인간사에 세세하게 개입하고, 조정하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다.

개입과 조정의 근거는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다가올 일들의 복잡성에 머리 휘저으며 일이 발생한 그 순간의 결정에 따라 행동한다.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발생했을, 그 시점에 맞춰 또 다른 결정을 내리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신감에 충만해 신을 모독한 휴브리스의(지나친 오만) 사례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 그녀는 직조 기술이 뛰어났던 사람이다.

문제는 그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직물의 수호신 아테나 여신까지 무시하는 일로 연결됐다.

그녀는 아테나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직조술이 뛰어나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닌 것이다.

이에 아테나는 노파로 변신해 그녀를 찾아가, 신을 욕보이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충고하지만, 그녀는 조언을 무시하고 아테나에게 도전한다.

그녀는 신들의 벌을 받는 인간의 이야기와 함께 신들의 비행 장면을 묘사한 작품을 만든다. 그 솜씨가 아테나조차 흠잡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지만, 신을 능멸한 그의 언행과 작품은 그를 파멸로 내몰았다.

아테나는 이 작품을 찢었고, 아라크네는 스스로 자살을 기도했지만 여신은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평생 실을 잦는 거미로 만들어 버렸다.

아라크네가 거미로 변했다는 소문이 그리스 전역에 돌았다.

이쯤 되면 휴브리스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아야 하는데, 부와 명성 그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었던 테바이의 왕비 니오베는 그 경고를 무시했다.

니오베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녀는 열 네 명이나 되는 자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 일곱에, 딸 일곱을 둔 그녀는 테바이의 모든 여성으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거기서 하늘을 찌르는 자만심이 출발했을 것이다.

예언에 따라 테바이의 여인들이 레토 여신의 신전에 경배를 드리는 날, 그녀는 휴브리스를 범하고 만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그의 오만은 다음과 같다.

니오베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레토의 신전을 찾았는데, 테바이의 여인들이 레토레게 경배 들이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이유는 자신이 레토보다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혈통과 가문, 남편의 공적, 자신의 아름다움 그리고 슬하에 둔 열 네 명의 자녀 등 그 무엇 하나 모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녀는 신전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레토의 자식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니오베의 휴브리스에 대해 처절히 복수한다.

활의 신들이기도 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니오베의 자녀들을 하나씩 활시위를 겨눠 추풍낙엽처럼 떨구고 만다.

하나씩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니오베는 경악하지만, 신의 복수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슬픔도 후회도 소용없는 일,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결국 돌이 되고 만다.

#숙고하는 삶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욕망의 포로가 되어 자주 휴브리스를 범하고 만다.

아마도 3000년 전의 그리스 세계에선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의 역할이 별로 주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죽고 사느냐의 전투에서 개인의 생존은 모든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기원전 500여 년 전,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숙고하는 삶을 말하기 전까지 그리스 사회가 이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다.

다만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평화의 시기를 맞아 에게 해를 중심으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새롭게 맞닥뜨린 바다 위의 모험은 삶의 태도를 바꾸게 만드는 명분을 제공했을 것이다.

이것을 놓치지 않고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를 중심으로 한 모험이야기 ‘오디세이아’를 통해 숙고하는 자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된 것이다.

외눈박이 퀴클롭스와 대결은 단 한 번의 실수가 그와 그를 따른 조직 모두의 죽음을 의미하는 싸움이었다.

한 번 선택한 전략의 결과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상황에서, ‘일리아스’ 시대의 결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지혜롭게 외눈박이 거물에게 포도주를 먹이고, 취한 틈을 이용해 탈출을 기도한다.

여기서 그의 지혜가 빛나는 대목은 자신을 ‘아무도 아닌 자’라고 소개한 대목이다.

그 이전까지 자신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영웅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음으로서 자신과 그를 따르는 부하들은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키르케와 칼립소, 나오시카의 유혹은 조직 전체와 오디세우스 자신에게, 현실에 만족하게 만들어 나태해 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목표를 잃지 않았고 탈출을 기도할 땐 주도면밀하게 상황을 만들어서 전략을 실행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오디세우스는 문헌상에 등장하는 최초의 숙고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10년 동안 바다를 헤매며 고생 끝에 도착한 그의 고향 이타카. 그런데도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끝까지 생각한다.

자신이 온전하게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상황을 체크하고, 그의 아내 페넬로페를 넘보고 덤벼드는 무뢰한들을 퇴치하는 계획을 수립한다.

이것이 바로 오디세우스의 미덕인 것이다.

‘권력의 법칙’을 쓴 로버트 그린은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짜라고 말한다.

그것이 권력의 열쇠라는 것이다. 앞날을 내다보고 끈기 있는 태도로 계획을 실현하는 사람. 오디세우스는 당시 사람들의 눈에 신과 유사한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을 수 있다.

현대인들은 욕망에 노예이다. 이성을 이야기하지만 항시 감성에 짓눌려 생활하면서 욕망에 따라 소비한다.

그런데 자신의 욕망에 따라 미래를 말한 것을 그들은 계획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순간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통찰력을 발휘해 판단했다고 말한다.

기업의 리더는 물론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해놓고 실행에 옮기면서, 늘 객관적으로 결정했다고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하지만 눈앞의 위험이나 쾌락을 대담하게 무시할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권력은 여기서 생기는데도 말이다.

현재의 상황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욕망도 본성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세운 목표가 있다면,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오디세우스처럼 욕망에 충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한발 물러서서 주도면밀하게 상황을 점검하며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비상 상황이 일반화된 21세기의 리더십의 본질이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지금도 읽혀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