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지혜”

리더는 설득하는 사람이다. 마음을 얻어야 자신이 목적한 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실적을 달성하려는 경영자는 영업조직과 고객을 설득해서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조직 내부 구성원과 외부 협력업체의 구성원을 설득해서 정해진 기간 내에 해당 프로그램을 완성도 높게 완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리더의 설득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3요소로 에토스와 파토스 그리고 로고스를 들고 있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의 신뢰성, 즉 화자의 인격과 신뢰감을 말한다.

파토스는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감정적인 소구력, 즉 정서적인 호소와 공감을 말하며 로고스는 설득을 위한 이성적인 논리력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설득의 요체는 ‘에토스’이다. 이유는 에토스 없이 로고스만으로 청중을 감동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에토스를 달리 표현하면 말하는 사람의 인격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리고 풍기는 인상, 즉 아우라이기도 하다.

아우라는 말과 행동 이전에 상대의 마음을 장악하게 된다.

한비가 ‘한비자’에서 설득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바로 마음이다. 상대의 마음을 잡아야 설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를 보자. 그가 전장에 나타나면, 트로이군의 병사들은 전율한다. 결과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존재 자체가 그리스 연합군 전체의 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같은 아킬레우스의 에토스가 전투에서 피아 구분 없이 그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 실패의 리더십 - 아가멤논
이에 반해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자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와 같은 아우라를 풍기지 못한다.

이유는 고대적 리더십의 핵심을 그가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리더십은 ‘도덕성’과 ‘윤리’에 뿌리를 둔다.

중세로 넘어오면 종교가 중심이 되고 근현대로 오면서 업무에 대한 성취도와 위계에 의한 명령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플라톤의 ‘국가’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나타난 고대 사회의 리더십은 지도자 자신의 자질과 함께 지도자와 그 구성원 간의 관계를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다.

바로 이 관계가 도덕성과 윤리가 채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그 관계에서 실패한다. 가장 대표적인 설득 실패 사례는 아킬레우스와의 갈등이다.

‘일리아스’의 중심 서사축인 이 사건의 본질은 전리품에 대한 분배 실패다.

아가멤논은 총사령관으로서 자신의 몫을 말하고 있고, 아킬레우스도 일선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정당한 몫을 주장한다.

이 갈등을 아가멤논은 자신의 지위에 담긴 권위로 설득하고자 한다.

윤리적인 리더십을 보이지 않고 바로 위계에 의한 강제력으로 설득하는 것은, 힘 있는 2인자를 당연히 반발하게 만든다.

아가멤논이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다.

아킬레우스가 전리품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며 파업을 선언하고 전투에 나서지 않으면서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군에게 밀리게 된다.

아이아스와 디오메데스 등이 나서서 버텨 보지만, 아킬레우스의 공백은 아가멤논에게도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에 대한 설득은 실패하고 만다.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자 급기야, 아가멤논은 일선 지휘관들 앞에서 야반도주를 논의한다.

전략적 측면에서 장단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설득의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리더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 상황을 정리한 인물은 오디세우스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아가멤논의 경솔함을 꾸짖는다.

현재의 상황에서 퇴각하면 그리스 연합군이 배를 빼는 과정에서 큰 인명피해를 볼 수밖에 없으며, 군 전체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것이라며, 외려 그를 설득시킨다.

#지혜롭게 설득하는 리더십 – 오디세우스
10년의 장기전 과정에서 승리를 위한 뚜렷한 전략도 갖지 않았고, 참모들에게 전략을 제대로 이끌어내지도 못한 아가멤논은 오디세우스의 설득에 자신의 생각을 거둔다.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보여서는 안 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오디세우스가 모든 순간 설득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파업을 선언한 아킬레우스에 대한 설득에 실패한 것은 오디세우스에게도 오명으로 남을 일이다.

충분히 생각하고 주도면밀하게 일을 추진하는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아킬레우스의 사촌 아이아스와 참전을 거부했다가 폴리스를 위해 생각을 바꾼 경험이 있는 포이닉스를 동행한다.

하지만 완강한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설득은 모두 성공한다.

심지어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를 두고 벌인 아이아스와 경쟁도 그의 지혜로운 설득과정은 돋보인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이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아킬레우스가 파업 중인 가운데 그리스 연합군의 최후 보루 역할을 했던 아이아스는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무공을 세웠다.

게다가 그는 조카이기도 하다. 당연히 조카이면서 공적을 많이 쌓은 자신이 무구를 이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이아스는 비겁함과 허약함을 대비시키며, 힘이 약한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거운 무구를 물려받을 경우 도망이 주특기인 그가 제대로 달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런데 명분에서 불리한 오디세우스는 이 과정에서도 놀라운 설득능력을 발휘한다.

그의 설득 포인트는 지혜로써 그리스연합군이 곤경에서 벗어난 사례에 대한 설명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나운 헥토르를 죽일 수 있었던 전사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킨 것이었다.

또한 1100여척의 전함들이 폭풍우에 막혀 트로이로의 출항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갈등하던 아가멤논을 설득해 그의 딸을 제물로 바치게 한 것, 즉 전쟁이 가능하게 한 것도 그의 공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진정한 지도자라면 단순히 용맹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지혜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못 박듯 아래처럼 말한다.

“아이아스는 저 방패에 새겨진 참으로 의미심장한 부조, 가령 바다의 땅, 땅에 산재하는 도시, 별 박힌 하늘, 플레이아데스성단, 히아데스성단, 바다에 들 수 없는 곰 자리, 그리고 오리온의 저 빛나는 칼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의 설득은 충 지혜를 통해 일궈낸 승리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을 뒷받침해주는 논리력이었다.

#21세기 설득의 리더십
지난 9년 우리는 설득에 실패해서 난장판이 되었던 국회를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언론은 싸우는 국회를 들춰내면서 후진적인 의회정치 구조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이 놓치고 있었던 대목은 의회가 계급적 이해가 충돌되는 공론의 장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논쟁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언론에선 충돌에 초점을 맞춰 합의하지 못하는 모습을 비판한다. 오히려 비판의 포인트는 설득하려는 의지의 부족과 힘의 논리에 따른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인데도 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두고 극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집권여당의 정치적지지 기반 지역에서도 거센 반발을 할 정도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소통하지 않고, 설득하려했던 점이다.

설득의 리더십은 충분히 들어준 뒤에 이뤄지는 인내의 과정이다. 충분히 들어주지 않고, 시간에 쫓기면 반발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나타난 반발에 대해 공적인 비판이 가해지면 리더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일리아스’는 아가멤논의 설득방법을 추천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충분히 고민해서 그 결과까지 고려한 설득, 즉 오디세우스의 설득을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적장에게 무릎까지 꿇고 애원하듯 호소하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설득은 ‘일리아스’의 절창인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전히 2800년 전의 그리스 서사시가 지금도 읽혀야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