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시대의 트로이와 그리스”
◆“2800년전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노래한 까닭”
◆“일리아스에서 읽어낼 수 있는 덕목”
1. 용기의 다양한 전형
2. 힘보다는 지혜
3.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 관용 - 지난호

◆“21세기의 관점에서의 ‘일리아스’[1]- 이번호

◆1인자와 2인자의 갈등

IT기업 IBM의 임원 교육과정에 인문학을 포함시켜 진행시키는 이유는 다양성이 기업의 매출은 물론 조직 운영에 긍정적 역할을 주기 때문이다.

IBM은 임원들에게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등 고전을 읽게 하고 그에 대한 생각 등을 경영에 반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고 있는 것이다.

‘안티고네’는 왕이 내린 명령(실정법)을 어린 조카가 어기면서 벌어지는 가족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IT기업 IBM은 임원들에게 이 책을 읽게 한 것일까?

우선 이 책은 실정법과 관습법 사이에서의 통찰을 주문하는 책이다.

하루에도 몇 십 개씩 결제를 기다리는 이메일이 답장을 기다리고 있고, 매출과 영업을 진작시키기 위한 영업전략회의는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가운데, 리더들은 사색을 통한 깊은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IBM은 다양성을 갖춘 최고의 리더가 비즈니스에서 실수를 적게 한다는 점에서 실정법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데 익숙한 직원에게 관습법의 긍정성을 놓치지 않고 복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기 바랐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도 ‘안티고네’만큼 많이 읽히는 고전이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는 물론 정치, 사회 등 인간이 사는 모든 영역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권력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고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리아스’는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권력의 문제는 통시대적으로 나타나는 갈등의 핵심 주제이므로 모든 리더들이 놓치지 않고 챙기려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리아스’에서 말하는 권력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있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 그리고 그리스 연합군에서 가장 뛰어난 무용을 지닌 천하무적의 지휘관 아킬레우스.

이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진 전리품 분배의 문제가 ‘일리아스’의 첫 소재이자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핵심 사건이다.

연합군 전체의 관점에서 효과적인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10년의 원정기간 동안 트로이의 방어전을 뚫지 못한 총사령관.

원정기간을 유지하기 위해 트로이 주변지역을 공격해 획득한 전리품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고 사령관의 권력을 남용한 정의의 파괴자.

아킬레우스의 파업 이후 트로이군의 공세가 강화되자 일선지휘관들을 앞에 두고 퇴각을 이야기하는 군사적으로 무능한 지휘관.

왕의 권위와 재력으로 모든 관계를 설정하고 위계를 유지하려는 제왕적 권위주의체제 옹호자.

위의 설명은 ‘일리아스’에서 보여주는 아가멤논의 민낯이다.

이에 반해 아킬레우스는 타고난 용기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각종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는 군사적 자질이 탁월한 장수다.

트로이군에서는 그에게 대적할 장수가 없을 만큼 1대1 전투에 능하고 몸싸움에 강한 장수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탁월한 장수와 못난 사령관간 갈등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이전쟁을 치르기 위해 가장 많은 비용을 치른 폴리스의 왕이다.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의 패리스 왕자에게 납치당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에게 복수를 청한다.

당시 그리스 폴리스 중 미케네가 가장 경제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전한 전함 총 1100여 척 중에 아가멤논은 당사자 메넬라오스 보다 60척이나 많은 100척의 배를 참전시킨다.

또한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출전 명령을 내릴 시기에는 폭풍우가 그치지 않아 자신의 딸을 재물로 바치기까지 했다.

경제적 측면과 당시 그리스 폴리스의 관계에서 미케네 중심의 그리스 연합군은 바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과정에서 보여주는 아가멤논의 모습은 지휘관으로서는 함량부족임을 여러 곳에서 보여준다.

앞서 설명했듯이 아킬레우스와의 갈등 요인이 되었던 전리품 분배의 문제가 우선 그렇고, 트로이군에 밀리게 되자 일선 지휘관에게 야반도주를 이야기한 것도 그렇다.

오죽하면 오디세우스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아가멤논의 경솔함을 꾸짖었을까.

어쩌면 10년의 전쟁 기간 동안 효과적으로 트로이를 공략할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순간부터 그의 전략적 마인드의 부재 및 지휘관으로서의 자질 부족을 예견해야했다.

그렇다면 ‘일리아스’에서 발생한 1인자와 2인자의 갈등은 과거에만 존재하는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선시대의 왕 중 이방원의 태종 등극과정, 단종과 추종세력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

이들은 비록 무력의 힘을 빌었지만 분명 1인자 보다 더 정치적인 능력과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에 권력 획득이 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일 중 ‘롯데그룹’의 신동빈, 신동주 회장간의 갈등도 같은 경향성을 보인다.

신동주의 일본 롯데와 신동빈의 한국 롯데는 분명 20년 전 큰 격차를 보였었다. 하지만 사업수완을 제대로 펼친 사람과 20년의 장기 불황 속에서 정체된 그림을 그린 사람 간에 실력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그러는 동안 갈등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문제는 그 실력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 갈등으로 인해 롯데그룹 전체가 부정적인 이미지에 휩싸이게 된다는데 있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갈등으로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군에게 무참하게 패했던 것처럼 롯데 그룹의 1, 2인자간 싸움은 기업에게는 회복하기 힘든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갈등의 당사자들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1, 2인자의 갈등이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사자는 미시적으로 보겠지만, 외부에서 볼 때 리더는 그 조직 전체다.

특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수록 리더의 신뢰감은 조직 내부에서부터 잃게 되며 기업 전체의 이미지도 따라서 사라지게 된다.

2인자가 1인자를 넘보는 순간은 1인자에겐 위기의 상황이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권위, 즉 왕의 권위로 2인자를 굴복시키려했지만 무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면 권위는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1인자 스스로 능력을 키우거나 2인자에게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면서 상황을 지켜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임기응변일 뿐이다. 1인자가 되려면 그 능력을 갖춰야 한다. 능력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욕망을 그만큼 줄여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즐길 수 있는 모험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구별돼야 한다. 프로젝트로서의 모험은 가치가 있지만, 리더를 선택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다.

아가멤논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오디세우스의 지혜(트로이의 목마)로 10년의 전쟁을 마무리 짓고 귀향길에 오를 수 있었지만, 고향 미케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분노였다.

그의 딸(이피게네이아)을 에게 해에 바치고 출전한 전쟁 기간 동안 미케네의 왕비 크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는 전쟁에서도 자신만을 생각했다면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의 결과는 상대에 의해 변화하게 된다.

크리타임네스트라의 복수는 어쩌면 당연했을 수도 있다. 예상하지 못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아가멤논은 그래서 트로이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만다.

1인자의 덕목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캐릭터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