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시대의 트로이와 그리스”
◆“2800년전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노래한 까닭”
◆“일리아스에서 읽어낼 수 있는 덕목”

1. 용기의 다양한 전형 - 지난호
2. 힘보다는 지혜 - 이번호
3.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 관용

◆“21세기의 관점에서의 ‘일리아스’

3-2 핀테크 시대, 어울리는 상상력 필요한 시대

호메로스, ‘힘’에서 ‘지혜’로의 질서변화 반영해 저작
일리아스, ‘힘과 용기’ 중심의 영웅 필요한 사회 대변
오디세이아, 각종 위험 내포한 바다에서의 생존법 설명

문학작품은 당대의 주된 생각을 담고 있다. 시기와 공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애송하고 애독했다는 것은 해당 작품이 정치적으로 필요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거나 생명을 다한 기존의 질서 및 이데올로기를 대신해서 새로운 질서체계와 이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쏟았다는 것은 그 만큼 살아가는데 유용한 정보와 교훈을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예술은 정치, 경제, 문화적 필요성, 즉 지배계층의 요구에 따라 소비되는 경향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2800년 전, 호메로스 당대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거작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같은 시대적 배경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일리아스’는 전쟁동안 벌어진 전사들의 영웅담을 직접적 소재로 했다면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난 후 사투를 벌이면서 10년의 귀향 여정을 떠난 한 영웅의 모험담을 다룬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두 작품에 담고 있는 시각의 차이는 매우 크다.

우선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과 매우 유사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들의 영웅성은 ‘힘과 용기’에서 비롯되는 무공에 있으며, 이는 2800년 전의 그리스 청소년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아킬레우스가 그리스 연합군을 대표해서 소아시아 지역의 트로이군을 대적하는 장면이나 디오메데스와 아이아스 등의 맹장들이 트로이의 헥토르와 막상막하의 승부를 펼치면서 지친 그리스 연합군을 구출하고 트로이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는 장면 그리고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를 접고 전투에 나서 헥토르를 상대로 승리하는 장면들 하나하나가 그리스 청소년에겐 교육적 가치가 듬뿍 담긴 그리스에서 살아가는 법을 담고 있는 ‘생존법’의 교과서였다.

특히 ‘힘과 용기’ 그리고 무공에서 거침없는 영웅성을 보여주던 아킬레우스가 그의 분노를 삭이기 위해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전장을 누비던 장면은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적진으로 찾아와 아킬레우스를 만나 정중하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하는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공감과 관용이라는 가치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의 이 장면에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고자했을 것이다.

거칠게 싸워서 생존해야 하는 사회이지만 전쟁이 없는 평상시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테베 등의 폴리스는 관용이 지배적 질서체계가 돼야 갈등을 최소화시키면서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힘과 용기’를 근간으로 한 거칠고 남성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중함’이 오디세이아 전편을 흐르는 생존법의 핵심코드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답은 “당대의 핵심 이데올로기가 변화하고 있다”이다.

‘일리아스’에도 오디세우스는 등장한다. 여기서도 그는 ‘힘과 용기’를 내세우기보다 지혜를 바탕으로 큰 생각을 일궈내는 전략가로 등장한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오디세우스를 추켜세우지 않는다.

파업을 선언한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와 함께 그의 진영을 찾아 설득한다.

성과는 없었지만 아가멤논의 입장에선 다른 카드가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한 아가멤논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기면서 트로이군의 맹공격에 함선을 꺼내 퇴각하려는 그리스 연합군을 설득해 다시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상황을 전환시킨 사람도 오디세우스였다.

아킬레우스를 대신해 전투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적진에서 빼온 것도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였으며 변장을 하고 트로이성에 잠입해 병영을 탈취해 복수를 감행한 것도 오디세우스였다.

10년 트로이 전쟁에서 뚜렷한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그리스로 돌아가자고 지휘관들에게 이야기할 때 그를 야단치며 연합군 진용을 안정시킨 사람도 바로 그였다.

그런데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선 오디세우스를 저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신화의 미로찾기’의 저자 스티븐 L. 해리스는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오디세우스의 공적은 인정하면서도, 변장을 하고 몰래 적진으로 잠입한다거나 어둠의 힘을 빌어 숨어 들어가는 행위를 영웅다운 행위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즉 ‘일리아스’가 써질 때까지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빨리 전쟁을 마무리 짓고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어딘가 애매한 영웅성 정도로 이해됐던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그리스 사회는 지능이 동반되지 않는 무력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된다.

아킬레우스와 같은 ‘힘과 용기’의 영웅보다 행동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도면밀하게 생각해서 실천에 옮기는 지혜로운 영웅이 폴리스 발전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는 과정에서 단순 반복되는 죽음의 릴레이가 어떠한 유익한 성과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폴리스들의 영웅관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고향 아타카로의 귀향을 주제로 한 ‘오디세이아’은 바다사람들의 이야기다. 새로운 호기심으로 출발하는 모든 여정에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새로움을 경험하는 대신 그 수업료는 내야 하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소의 수업료를 지불하기 위해선 행동 이전에 행동의 결과를 생각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래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신중하다.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전의 영웅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중하지 않으면 에게해와 지중해에서 만나야 하는 각종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생각하는 사람, 지혜롭게 움직이는 영웅이 절실히 요구하게 된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10년 동안 귀향의 험로를 헤쳐나가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바닷사람들의 모험담으로 치환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온전히 펼쳐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지혜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목마작전을 펼쳐 10년의 교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트로이 전쟁의 해결사가 된 장면이 빛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경은 2800년 전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말미(1990년 7월)에 은행 고객 채널로 각광 받고 있던 ATM은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이 대당 9000만원의 돈을 들여 일본에서 수입해서 사용했다.

그런데 26년이 흐른 지금 ATM은 은행권의 대표적인 애물단지가 됐다.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 채널이 활성화되면서 대당 연간 손실액이 166만원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핀테크의 발전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이 같은 은행의 변혁과정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일리아스’를 ‘오디세이아’로 이야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 호메로스적 상상력이다.

핀테크가 빛을 발하기 위해선 더욱 그러할 것이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