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시대의 트로이와 그리스”
◆“2800년전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노래한 까닭” - 지난호
◆“일리아스에서 읽어낼 수 있는 덕목” 
1. 용기의 다양한 전형- 이번호
2. 힘보다는 지혜
3.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 관용
◆“21세기의 관점에서의 ‘일리아스’

1.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용기’

시공간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 및 캐릭터 부재
고전 읽는 이유는 다양한 전형 만나기 위해서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노’를 극복할 수 있는 ‘관용’의 힘일 것이다.

거기에 다양한 용기의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폴리스 구성원들이 공동체 존립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미덕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2800년 전의 그리스 폴리스 청소년을 위한 교과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공동체를 지키고자하는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건네주고 싶었던 가치를 ‘일리아스’는 제대로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나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로스도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준 ‘일리아스’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 다양한 형태의 ‘용기’와 영웅들
트로이 전쟁을 중심으로 노래한 ‘일리아스’에는 다양한 전쟁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서사시의 주인공격인 아킬레우스와 그를 도와 전쟁터를 누비는 아이아스, 디오메데스, 오디세우스와 상대 진영의 헥토르, 그리고 전쟁을 주도하고 싶지만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지 못했던 아가멤논과 실질적인 전쟁의 원인 제공자인 트로이의 셋째 왕자 파리스 등, 그들 모두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이다.

그의 무용을 누구도 따를 수 없어 전장에 나서면 적군을 모두 떨게 만들고 승부를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만드는 아킬레우스.

그의 용기는 타고난 용기다.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태어나 사티로스로부터 승리하는 법을 배운 아킬레우스는 당대의 싸움꾼이었다.

그래서 스물일곱살의 그를 호메로스는 젊음과 힘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물론 그의 성급하고 욱하는 성질 때문에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 같은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혈기왕성한 그는 약한 자들도 그에게 기댈 만큼 기성의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공정하지 못한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전리품 분배에 분노했던 것이다.

그의 분노로 인해 그리스 연합군의 시민들이 무수히 죽어나갔지만, 그는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영웅이다. 전쟁에 참여한 순간 그는 영생이 아니라 명예를 선택했기 때문에 더욱 현재의 시간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격정적인 성격도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방문과 간청 앞에 누그러진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 ‘관용’이 아킬레우스를 통해 현시된 것이다.

트로이의 첫째 왕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처럼 타고난 용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용감해진 사람이다.

학습을 통해 용기를 배운 그의 주된 관심사는 공동체이다.

작게는 가족에서부터 크게는 트로이까지 그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전쟁에 나선 것이다.

두려움의 본질을 알았던 헥토르는 비겁함을 떨치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용기를 떠올린다.

아킬레우스는 용감해지기 위해서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지만 생각할 줄 아는 인간, 헥토르는 사색과 품위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에서 용기를 불러냈다.

그런 헥토르의 훈련된 용기는 왕비인 그의 어머니가 요청한 휴식도, 그리고 아내인 안드로마케가 권한 수성전략도 수용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그의 생각에 비겁함으로 느껴졌고 품위 없는 행동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킬레우스와 일전을 벌인 것이다.

세 번째 용기는 디오메데스가 주인공이다.

아킬레우스가 파업을 하는 기간 동안 그리스 연합군의 전력을 유지시켜준 이 사람의 용기는 언제든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날렵한 용기이다.

아킬레우스만큼 용맹한 것을 보면 디오메데스도 타고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다르다. 아킬레우스의 성급하고 욱하는 성질을 디오메데스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용기는 중세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즉 당시 모든 영웅들이 보여줬던 고대적 미덕보다 그는 인류가 앞으로 살면서 더 갖추고자 했던 덕목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전장터에서 트로이의 장수 글라우코스를 만났을 때, 그는 선대의 인연을 확인하고 반갑게 맞이하고 중세시대의 기사들처럼 서로의 무구를 바꿔 입는다.

게다가 그는 ‘힘과 용기’만으로 모든 문제에 대응하려했던 당대의 영웅들과 달리 앞으로 일어날 일의 결과를 생각하며 움직이는 현대적 측면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관용’을 통해 성장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디오메데스를 등장시켜 새로운 미덕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불과 1~2세기 뒤 그가 가진 생각하는 용기처럼 ‘균형’잡힌 캐릭터가 그리스의 주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은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용기 유형이 있다. 아이아스의 장비와 관우처럼 넓은 어깨를 지닌 등치 큰 묵직한 용기이다.

멧돼지마냥 고집스럽기도 한 그는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라는 전리품 때문에 전투를 파업하는 것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어렵고 복잡한 것은 싫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용기는 공격보다 수비에서 빛을 발한다.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그든 목숨을 다해 버텨낸다.

그래서 호메로스는 그를 탑과 벽이라고 말한 것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만큼 절망도 귀찮은 존재일 뿐, 아이아스는 그래서 콘크리트처럼 철옹성이 되어 트로이 전쟁을 치른다.

이밖에도 친구가 파업한 가운데 그리스 연합군 전사들이 트로이의 헥토르에게 도륙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아킬레우스에게 무구를 빌려 나가는 파트로클로스의 용기가 있으며, 적에게 자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그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뚫고 적진을 향하는 아버지의 큰 울타리 같은 프리아모스의 용기도 있다.

#‘일리아스’ 용기의 현대적 의미
이처럼 다양한 용기가 각각 다른 캐릭터를 통해 ‘일리아스’에서 노래되어진 것은 2800년 전 그리스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폴리스간의 경쟁,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에 등장하는 강력한 국가들과의 전쟁 등을 펼쳐야 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 구성원들은 ‘일리아스’에서 이야기되는 ‘용기’가 그 무엇보다 필요했다.

또한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시민들은 전쟁터에서 보였던 ‘힘과 용기’ 위주의 의사결정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며, 그럴 때를 대비해 ‘관용’하는 모습도 절실히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일리아스’에는 녹아 있는 것이며, 그 각각의 미덕은 280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의 뿌리깊은 전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일리아스’는 꼭 서구적인 미덕인가? 답은 그렇지 않다.

아킬레우스, 헥토르, 아이아스, 디오메데스, 파트로클로스, 파이드로스 등 ‘일리아스’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현대를 사는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큰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아킬레우스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힘과 용기’만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고 파업을 벌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이 질문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또한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아이아스처럼 각종 사안을 단순화시키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흔들림 없이 지키고만 있다면,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고 만용을 부리며 아군을 공격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이들 인물과 달리, 헥토르처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공공의 이익에 맞춰 ‘힘과 용기’를 포함한 가용한 자원을 배분한다면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현대적 관점에선 아킬레우스보다 헥토르가 더 간절한 이유는 바로 이점 때문이다.

그런데 헥토르가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공격해 오는 아킬레우스와 맞대결을 벌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비겁하다고 느끼고 전선에 나가듯이 우리들의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헥토르처럼 행동한다면 또 결과는 어떠할까?

답은 명쾌하다.

통시적인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인간세이다. 호메로스는 어쩌면 그런 인간군상의 문제점을 모두 파악하고 한꺼번에 영웅들의 모습을 보여줬는지도 모른다.
필요할 때 모범을 찾아서 참고하라는 듯이 말이다.

운동장에서 경기를 벌일 때는 아킬레우스와 디오메데스, 그리고 헥토르의 가치가 절실하다.

이는 정책을 입안하기 위해 책상머리에 앉아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공격적인 아이템이 필요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따로 있을 뿐이다.

경쟁국과 외교회담을 벌일 때는 아킬레우스나 아이아스가 아니라 디오메데스의 생각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며, 헥토르의 공공적 성격의 용기도 추가돼야 할 것이다.

하나의 캐릭터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두를 만족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다.

글로 기록을 남긴 수천 년 동안 인류의 고갱이가 모여 있는 만큼 참고하고 싶은 전형도 많은 것이 바로 고전이기 때문이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