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시대의 트로이와 그리스” - 지난호
◆“2800년전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노래한 까닭” - 이번호
◆“일리아스에서 읽어낼 수 있는 덕목”
◆“21세기의 관점에서의 ‘일리아스’

총사령관 자격 없었던 아가멤논의 한계
공동체보다 자신만 생각한 아킬레우스

# 호메로스가 본 ‘일리아스’의 미덕
호메로스에게 트로이 전쟁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트로이의 패배를 노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수많은 영웅들이 명멸해간 10년의 전쟁 기간 동안 벌어진 인간 군상간의 ‘분노’를 소재로 ‘관용’을 노래하고자 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핵심 가치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갈등과 전쟁 이후에 공동체가 화합할 수 있는 ‘관용’이었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은 오디세우스의 ‘생각(지혜)’로 끝났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전쟁의 승패에 대한 기록을 역사가의 몫으로 남기고 ‘일리아스’에서는 오디세우스의 지혜를 말하려 하지 않았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노래할 때까지는 아직 오디세우스의 시대, 즉 지혜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2800년 전, 그리스의 폴리스 시민들에게 풀기 어려운 문제는 ‘힘과 용기’로 해결했기 때문에 호메로스의 관심도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오디세우스의 ‘지혜’가 10년 트로이 전쟁 해결의 결정적 열쇠였지만 ‘일리아스’는 그의 영웅성을 찬미하지 않았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눈에 비친 핵심덕목은 ‘용기’와 ‘관용’ 그리고 그 바닥에 깔려 있는 필멸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각은 물론 호메로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서사시와 희곡들은 모두 인간의 한계를 핵심정서로 다루고 있다.

불멸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오만함이 빚어내는 신에 대한 휴브리스는 한계를 자각하지 못한 인간의 파멸을 의미한다.

호메로스와 그를 잇는 그리스의 작가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했다. 이유는 오만함이 인간의 자멸은 물론, 폴리스 사회를 해치는 사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호메로스의 눈에 비친 ‘용기’와 ‘관용’은 이어지는 글에서 설명키로 하고 여기서는 ‘일리아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고 있는 ‘한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한계
우선 아가멤논의 한계다.

그는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다. 그리스 폴리스 중 가장 강력한 왕이었던 그는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을 두고 벌인 그와의 갈등에서 리더십을 상실한다.

전리품은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였다. 아킬레우스는 전쟁터에서 보여준 자신의 전공에 따라 브리세이스를 취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해서 정복전쟁을 치루고 있는 연합군의 총사령관이라는 지위가 전쟁터에서의 전공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브리세이스를 빼앗는다.

‘일리아스’에서 노래하는 주제의식 ‘분노’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문제는 뛰어난 조직원과 덜 뛰어난 리더 간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아킬레우스는 뛰어나다. 한마디로 불세출의 영웅이다.

하지만 아가멤논에게서 그런 영웅성은 발견할 수 없다. 다만 그보다 직급이 높을 뿐이다.

아가멤논의 한계는 바로 직급으로 성과를 자신의 몫으로 바꾼 잘못된 분배관에서 비롯됐다.

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면 분배의 정의를 통해 조직원의 충성심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트로이 전쟁은 교착상태로 빠지고 만 것이다.

총사령관의 자격을 거론할 만큼 그의 리더십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한계
둘째는 아킬레우스의 한계이다.

당대 최고의 영웅으로 전쟁에 참여하면 죽는다는 신탁을 알고서도 탁월함을 추구하기 위해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진정한 영웅이다.

하지만 그는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브리세이스라는 한 여인을 두고 갈등을 벌이다가 자신의 몫을 부당하게 빼앗긴 뒤 파업을 선언한다.

‘일리아스’ 첫 대목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듯이 그의 파업은 셀 수 없이 많은 그리스 연합군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동시대의 영웅들인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그를 설득해 보지만 냉담해진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 그의 파업에 참다못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전투에 나가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이었다.

‘분노’의 대상을 적으로 바꾸면서 전투는 다시 그리스 연합군이 주도할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한계는 공동체보다 자신을 우선하는 태도이다. 우선 그는 여신 테티스의 아들이다.

또한 불멸의 신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영웅성을 보여주기 위해 죽음을 알면서도 참전했다.

이러한 동기가 그를 더욱 존귀한 존재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한계는 공동체의 규율과 가치를 무너뜨렸다. 그의 용맹은 트로이를 떨게 했을지 모르지만 그와 같이 참전한 영웅은 물론 그리스 병사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같은 관점에서 나의 동료가 아킬레우스 같다면 당신은 그와 어떻게 협업을 할 수 있을까? 답은 여기서 생략한다.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말이다.

#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한계
셋째 헥토르의 한계다. 트로이의 맹장이자 첫째 왕자.

아킬레우스처럼 타고난 용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학습된 용기를 통해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10년 동안 막아왔던 용장이기도 하다.

그리스 연합군의 맹장 아이아스와 하루 내내 전투를 펼쳐 무승부를 기록할 정도 그의 무공도 분명 뛰어나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와는 비교되지 않는 전투력이다.

그러나 그는 아킬레우스와의 전투를 기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킬레우스와 맞선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는 10년 동안 수성전략을 펼치면서 그리스연합군의 지리멸렬한 공격을 방어했던 효율적인 장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분열적 태도를 보인 그는 트로이성에서 그리스 군의 공격을 방어하지 않고 성을 박차고 나와 아킬레우스와 일대일 승부를 벌인다.

그 결과, 트로이는 최후의 보루를 잃게 되었다. 그리스 연합군의 영웅들과 제대로 맞설 장수를 잃는 다는 것은 결국 패배를 의미한다.

오디세우스의 엉뚱한 계략에 넘어가 함락 당하고 말았지만, 한순간의 영웅성을 향한 그의 오만이 그의 조국을 패망케 한 것이다.

그렇다면 ‘1편’에서 언급한 야후와 노키아, 소니 등의 사례와 ‘일리아스’의 주인공이 갖고 있는 한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연재를 정리하는 글을 통해 다루겠지만 이들 기업들은 모두 잘 나가는 기업들이었고 경쟁자가 등장했을 때에도 정점을 달리고 있었다.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그리고 헥토르가 그리스연합군과 트로이에서 각각 잘 나가는 사령관이자 장수였던 것처럼 말이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