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85% ‘핵심기능 수행하지 않는다’ 생각
혁신의 성공 위해선 기술 중심의 사고 필요

KEB하나은행이 최근 1000여명의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 그 중에는 지난 6월 외환•하나은행의 성공적인 전산통합을 격려하기 위해 IT본부 직원 28명의 승진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함영주 행장의 IT본부 힘 실어주기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누구나 힘든 일을 처리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하게 돼 있는 법인데,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다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권의 CEO들이 IT영을 핵심역량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직접적 증거가 없다는 점도 이를 부연해준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의 근거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핀테크 등이 금융업의 중심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모든 은행들이 IT를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실제 은행장이나 금융지주의 회장들의 동선과 워딩에서, IT를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합병을 경험한 은행들은 전산통합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경영진들이 IT영역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KEB하나은행도 전산통합 전날, 함영주 행장은 물론 김정태 금융지주 회장까지 밤샘 근무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IT통합이라는 이벤트가 갖는 특성은 은행을 찾는 고객들의 채널을 일원화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영업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통합 기간 중에는 은행의 역량 중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은행들이 IT영역을 핵심역량으로 여기고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IT본부의 직원 28명을 특별 승진시켰다고 핵심역량에 대한 대우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은행들이 IT를 핵심역량으로 여긴다고 평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은 임원 구성에서 IT영역을 경험한 사람의 비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 은행은 물론 금융회사들의 경영진들은 IT를 핵심역량이 아니라 영업을 위한 지원부서 쯤으로 여긴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최근 별세한 서진원 신한은행장만 전산정보부장을 경험한 은행장으로 기록될 만큼 은행장 승진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임원의 경우도 전산부분을 담당하는 CIO와 보안을 담당하는 CSO만이 IT인력들의 몫으로 여겨질 뿐 IT인력이 영업이나 마케팅 등 기타 핵심부문의 임원으로 승진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 같은 생각을 뒷받침하는 보도가 최근 있었다.

‘CIO’는 앤덜 그룹의 애널리스트이자 대표인 롭 앤덜의 ‘혁신에 실패하는 CEO’를 주제로 기사를 작성했는데, 주된 내용은 CEO들이 대체로 조직의 혁신역량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400대 기업들의 CEO를 대상으로 조사된 KPMG의 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된 이 기사에서 롭 앤덜은 “CEO의 85%는 IT가 핵심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가지게 된 정보가 맞는 것인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나 비즈니스 분석(BA) 등의 IT관리 서비스를 실행하면서도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내리기보다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 BBVA 은행의 핵심역량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있다. 스페인의 BBVA은행의 프란치스코 곤잘레스 회장이다.

그는 지난 8년간 IT 영역에 5조원(40.5억 유로)가량을 투입했고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은행은 망할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은행을 소프트웨어회사로 재정의해야 하고, 이에 따라 은행의 역량을 집중시켜 5년 안에 은행 직원의 절반을 디지털 업무로 전환시키겠다고 말했다.

제너럴 일렉트릭이 사물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변모를 추진하고 있고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도 자율주행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환할 뜻을 비쳤듯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BBVA도 모바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전환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이며, 곤잘레스 회장은 자신의 정책과 예산집행을 통해 조직원들의 사고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 은행의 디지털 활동고객은 지난 2011년 710만 명에서 지난 2015년 1500만 명으로 배 이상 증가했고 모바일 고객은 같은 기간 5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16배 확대됐다.

특히 오너십을 갖춘 은행장의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은행이 서서히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모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 돼야 우리는 IT를 핵심역량으로 대우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정태영 부회장의 새로운 변신
“업계에 내려앉은 안개를 뚫기 위해서는 이제는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회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부터 조금은 낯설지만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지난 5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 글에서 읽어내야 하는 고갱이는 ‘다르게 하는 것’이라는 모방행위가 갖는 한계를 정 부회장이 느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른 회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CEO로서의 결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핵심역량을 IT에 쏟아 부어 은행 조직의 절반을 디지털 업무에 배치하겠다는 스페인 BBVA은행의 곤잘레스 회장처럼 그도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기회를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디지털과 모바일 기술이 금융회사를 거칠게 혁신의 길로 내몰고 있는 상황에서 ‘흉내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그의 생각은 결국 실리콘벨리에 사무소를 개소시켰으며 올 들어 규모도 늘려나갔다.

또한 디지털 현대카드 전략은 손쉽게 고객들이 자신의 모바일환경에서 카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것을 두고 혹자는 경영진의 오너십 유무를 거론할지도 모른다. 정 부회장처럼 오너십이 확실한 경우에나 추진할 수 있는 일이라는 설명을 할 것이다.

하지만 오너십이 있다는 것만으로 디지털 변신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너십을 갖춘 많은 회사들이 여전히 말로만 ‘변신’을 추구하는 것만 봐도 이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IT는 기술이다. 기술이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언어가 되고 있다는 점을 더 이상 간과한다면,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는 국내 금융기업에게도 마찬가지다.

혁신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기술을 되도록 중심에 두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인드가 오너십에 앞서는 CEO의 생각으로 자리 잡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