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소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는 붕괴
2차 기계혁명 시대에 걸맞은 복지시스템 필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이벤트 이후 국내 언론의 인공지능 보도 비중이 높아졌다. 물론 다양한 영역에서 펼치고 있는 인공지능의 활약상이 눈에 띄게 늘어난 이유일 것이다.

요리사에 이어 의사, 소설가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던 인공지능이 최근에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시장에 까지 진출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의 대형 로펌 베이커 앤드 호스테틀러는 지난 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인 로스 인텔리전스가 제작한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를 고용했다고 발표했다.

이 기사는 국내 신문들의 1면 주요기사로 다뤄질 정도로 보도의 비중도 높았다.

로스는 이 로펌에서 초당 10억장의 법률 문서를 분석해 자료를 만들고 실제 변호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최적의 자료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국내에서의 인공지능 동향도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왓슨’을 개발하고 수년째 한국에서의 파트너를 찾고 있었던 한국IBM이 드디어 한글 자연어 처리 파트너로 SK C&C와 협력키로 했다.

SK C&C와 한국IBM은 연말까지 한글버전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 초에 완성된 한글 ‘왓슨’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한국IBM은 일본의 ‘페퍼’처럼 왓슨을 로봇에 탑재한 ‘나오미’를 국내행사에서 소개하는 한편 API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 교육도 실시했다.

또한 IBM의 사회공헌프로그램 성격으로 왓슨을 이용한 미세먼지 예보시스템 도입을 환경부와 협의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공지능의 역할이 증가하면서 복지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생산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경제 운영을 위한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 비스마르크와 복지시스템
우리나라는 물론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은 자국민의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기 위해 그 범위와 형태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복지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복지제도는 보수적인 정치인 독일의 비스마르크에 의해 시작됐다.

황제의 통치를 굳건히 하려했던 비스마르크의 입장에서 하층계급의 급속한 사회주의 세력화는 반드시 막아야할 과제였다.

“정부는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면서 가장 교육수준이 낮은 무산계급에게도, 국가란 필수적인 것 뿐 아니라 복지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도록 해야 한다. 무산계급이 바로 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 그들이 국가를 상류계급 사회만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이익도 대변하는 기관으로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비스마르크가 노동자 복지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말이다.

비스마르크 시절의 독일은 프로이센 시절과 차원이 달랐다. 통일된 독일은 더 이상 대륙의 낙후된 국가가 아니었다.

철강, 기계, 화학 등의 산업에서 독일은 영국을 추격하거나 일부 산업에서는 역전시키면서 당당히 중공업국가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동자의 조직화는 비스마르크가 구상한 입헌군주제적 산업국가에 대한 방해물이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하는 것이 노동자 연금과 재해보험 등의 복지시스템이었다.

비스마르크가 복지제도를 도입할 당시 독일인의 평균 수명은 60~65세였으며, 100% 모두 노동을 하려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0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는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2차 기계혁명이 진행되면 될수록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산업 국가들의 실업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10%는 상회에서 그보다 높은 수준의 실업률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평균수명은 40년 정도 늘어 100세를 바라보고 있다.

노동하고 싶어도 노동할 수 없는 인구가 늘어난 데다 평균수명까지 늘게 돼 체감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게 돼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복지시스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그리고 핀테크 등의 신기술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지만 이 기술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일자리들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즉 신기술에 만들어낼 일자리의 수나 속도보다 사라질 일자리의 수와 속도가 많거나 빠르다는 것이다.

인간보다 더 정확하게 그리고 근면하게 일을 처리할 경우, 자본은 분명히 인간보다 기계를 더 선호할 것이다. 전문가들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왓슨이나 알파고가 모두 의료산업에 기웃거리고 있고, 금융산업과 법률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결국 기계력의 활용 폭이 넓어질수록 실업의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19세기 비스마르크의 생각을 21세기에 되살리게 한 대목이다.

기술적 실업에 처할 21세기의 러다이트들이 늘어날수록, 자본은 위기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생산을 대체할 로봇과 인공지능은 생산은 해도 소비는 못하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실업의 증가는 소비의 축소를 의미한다. 결국 자본은 생산한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 기본소득제
그래서 등장하고 있는 개념이 ‘기본소득’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장에 따라 소비할 수 있는 소득을 잃게 될 노동자들을 위해 국가가 전체 국민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일부 북유럽 국가들이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고 올 6월에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핀란드의 경우 전체 국민에게 103만 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고 스위스는 전 국민에게 295만원을 지급하는 안을 투표할 예정이다.

뉴질랜드도 기본소득제를 검토하고 있고, 올해 우리나라의 총선에서도 한 정당의 공약으로 등장한 바 있다.

기본소득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세 가지 정도 있다. 하나는 ‘공동체’의 붕괴를 막고 인간의 존엄을 국가가 지키고자 하는 시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국가의 복지시스템이 만들어낼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개인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복지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다가올 ‘로봇 시대’에 대비한 보험 정책이라는 관점이다.

특히 IT산업의 종사자들이 기본소득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이는 비스마르크의 복지제도에 대한 21세기적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다음의 창업자였던 이재웅씨가 올 초 트위터에 올리면서 화제가 됐고,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주 기본소득제의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실리콘벨리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벤처캐피탈리스트 마크 앤드리슨, 샘 알트만 컴비네이터 등은 언론과의 인터뷰 내지 블로그 글을 통해 제도 도입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지난 주 ‘아틀란틱’지는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기본소득제를 실행하자는 스콧 센튼스(Scott Santens, 기본소득제 주창자)의 기사를 다루면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하는 추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사회에 대한 청사진이 분명하게 그려질수록 기본소득제에 대한 경향성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만약 이같은 상황에서 비스마르크가 환생한다면 그는 어떤 정책결정을 내릴까? 답은 점점 분명해보인다. 실업에 의한 공동체의 붕괴를 막으면서 기본적인 생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존엄성을 지키는 인간 세상. 그래야 현재의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