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의 기계인간, 춤추며 왕의 애첩 희롱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현실의 인공지능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중국 프로기사에 압승

주나라 목왕이 서쪽 지방을 순찰하다가, 곤륜산을 넘어 엄산까지는 가지 않은 채 되돌아 왔다.

중국에 다다르기 전 도중에 어떤 사람이 공인을 바쳐왔는데, 이름을 언사라 하였다. 목왕은 그를 다가서게 하고 물었다. “그대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언사가 대답했다. “저는 다만 명하시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 있으니 바라건대 임금님께서 그것을 먼저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목왕이 말했다. “다음 날 함께 갖고 오너라. 내 그대와 더불어 그것을 구경하마”

다음날 언사는 임금님을 알현하였다. 임금님이 그를 다가서게 하고는 말하였다. “그대와 더불어 함께 온 자는 무얼 하는 사람인가?”

그가 대답했다. “제가 만든 가무를 할 줄 아는 자입니다.”

목왕이 놀라서 그것을 보니 나아가고 걸어다니고 몸을 굽히고 젖히는 게 정말 사람이었다.

교묘하게도 그의 턱을 움직이면 곧 가락에 맞는 노래가 나왔고, 그의 팔을 받쳐 들면 곧 장단에 맞는 춤을 췄는데, 천변만화하는 재주가 그저 뜻대로만 됐다.

임금님은 진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여러 임금의 미인들과 시첩들을 거느리고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재주가 다 끝날 즈음에 가무를 하던 자가 그의 눈을 꿈쩍거리면서 임금님 곁의 시첩들을 불렀다.

임금은 크게 노하여 즉시 언사를 컬로 베려 하였다. 언사는 크게 두려워하면서 즉석에서 가무하던 자를 해체하여 임금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모두가 가죽과 나무와 아교와 옻칠과 흰색 검은 색과 붉은 색, 파란 색들을 붙여 모아 만든 것이었다.

임금이 그것들을 자세히 조사해 보니 안으로는 간과 쓸개와 심장과 폐와 허파와 콩팥과 내장과 위장이 있고 밖에는 근육과 벼와 팔다리와 관절과 피부와 털과 이빨과 머리카락이 있는데 모두가 가짜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그러나 모든 기관이 하나 갖춰지지 않은 것은 없었다. 모아 맞추니까 다시 처음 볼 때와 같이 됐다.

임금이 시험사아 그의 심장을 떼어내자 곧 입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 그의 콩팥을 떼어내자 곧 다리로 걸을 수 없게 됐다.

목왕은 비로소 기뻐하여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의 교묘함은 바로 조물주와 같은 공을 이를 수가 있구나!”

그리고 명을 내려 둘째 번 수레 그를 싣고 돌아가게 했다. 반수의 운제나 묵적의 나는 솔개 같은 것은 스스로 말하기를 능력의 극치를 다한 것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제자인 공문가와 금골희는 언사가 교묘함을 듣고서 그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 들려 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평생토록 감히 재주에 대해 얘기하지 않게 됐고 가끔 그림쇠와 굽은 자를 들게 됐다고 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로 유명한 ‘열자’에 나오는 기계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와 우공이산은 모두 ‘열자’의 ‘탕목’편에 나온다.

# 중국 신화 속 인공지능
열자는 노자와 장자류에 속하는 도가 사상가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 동장하는 기계인간은 오늘날의 인공지능에 해당된다.

어쩌면 금속으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로봇보다 나무와 가죽 아교 물감 등으로 구성된 이 기계가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면 보다 월등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임금의 애첩을 희롱하기 까지 하는 기계인간의 모습은 해학까지 담아낸 2500년 전의 상상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열자가 이 이야기를 저술한 까닭은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력을 들춰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의 시선은 인간의 기술에 닿아 있었다.

인간의 기술이 신묘한 경지에 달하면 자연과 조화해 조물주에 다가설 수 있음을 보여 주려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선으로 언사가 만든 기계인간을 보면, 단순한 재밋거리를 넘어서 인간을 희롱할 정도의 감정과 통제되지 않는 미성숙한 이성을 상상 속에서 그려낸 당대 사람들의 상상력을 보게 된다.

이처럼 인간에게 웃음을 주는 기계인간 내지 인간을 돕는 움직이는 기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동아시아 삼국(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많이 읽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에도 사이보그가 등장한다.

노쇠한 제갈공명과 위나라 장수 사마의가 기산(岐山)에서 대치한다.

여섯 번째 나선 북벌 길에서 제갈공명은 군량문제로 잡은 승기를 놓고 철수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군량을 운반할 목적으로 목우(木牛)와 유마(流馬)를 제작케 한다. 병참과 관련한 군사들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한 선택이었다.

어떤 동력으로 유마와 목우가 움직였는지는 모르지만 전승돼 오면서 살이 덧붙여진 ‘삼국지연의’에 보태진 당대 사람들의 또 다른 상상력의 파편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인공지능 바둑을 넘보다
그런데 고대인의 상상력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동서양의 고전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인공지능이 단순한 재밋거리를 넘어서 인간의 능력을 넘보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구글의 인공지능개발업체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인간 프로 바둑기사에게 최근 5:0 완승을 거뒀다. 네이처는 지난 1월28일 표지로 이 기사를 보도했다.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역사는 20년 전(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에게 패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5년 전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의 한 TV퀴즈프로그램(제퍼디 쇼)에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역대 최고기록으로 우승했던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2016년, 거침없이 발전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인공지능이 급기야 그동안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왔던 바둑을 넘보고 있다.

유럽바둑 챔피언을 세 차례 차지한 바 있는 중국계 프로바둑 기사인 판후이(2단)를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5:0으로 완승을 거뒀다.

인공지능이 최초로 프로 바둑 기사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지난 주 네이처는 알파고의 승리를 전하면서 “십 년 쯤 후에나 현실화할 것으로 여겨졌던 위업을 달성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대국에서의 승리는 다른 까다로운 인공지능 영역에서도 인간 수준의 능력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제시한다“고 평했다.

#바둑과 알파고
바둑은 탐색할 공간이 워낙 광범위한 데다 경우의 수가 굉장히 많아 상대의 움직임을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특히 바둑판에 나타날 수 있는 대국의 수는 수학적으로 최소한 361!(팩토리얼, 361×360×359× …)이라고 한다.

사실상 무한대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우의 수 또한 10의 100제곱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도 많다고 한다.

체스는 20개 정도의 다음 수가 존재한다면, 바둑은 200개가 넘는 수를 상정하고 계산해 웬만한 인공지능의 능력으로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면서 수를 계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구글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학습’이 아닌 ‘딥러닝’ 방식으로 바둑기사의 움직임을 관찰시켜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알파고’는 100만 번 정도의 바둑을 뒀다고 한다. 보통 바둑기사가 1년에 1000번의 대국을 갖는다면, 알파고는 1000년 동안 둘 대국을 치른 것이다.

특히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줄이느냐를 알고리즘의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이라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 개발된 알고리즘 중에서 가장 인간의 뇌와 유사한 방식이라는 정설이다.

이 같은 훈련을 받은 알파고는 올 3월 세계 챔피언(2014년 상금 1위)인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낸 상태다.

주목왕의 애첩을 희롱했던 고대의 인공지능이 오늘날 바둑에서 인간을 희롱하고 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 거침없는 발전의 속도만큼 희롱의 강도도 높아질지 관심이 집중될 때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