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다. 여러 수를 미리 읽어서 가장 좋은 수라고 생각하고 수를 두지만 그 결과가 안 좋게 나올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든 말이다.

우선 그 생각의 길고 짧음을 누가 재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주관적인 시간의 길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가 좋을 때는 충분히 생각한 숙고(熟考)라고 말할 것이고, 결과가 안 좋으면 악수를 둔 장고(長考)라고 말할 것이다.

다분히 나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한 핑계거리로 하는 이야기 쯤으로 이해하면 될 말이다.

이렇듯 기준이 내게 있지 않고 남에게 있으면 생각에 대한 평가도 일정치 않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남의 말에 흔들릴 필요없이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살라고 말하고 있다.

# 생각에 생각을 더하면?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목표에서 멀어지니,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단테 ‘신곡’ ‘연옥’ 제5곡, 열린책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연옥(지옥과 천국의 중간쯤 되는 곳)을 여행하면서 회개를 미루다 급사한 영혼을 만났을 때,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한 말이다.
(단테의 ‘신곡’은 단테가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한 내용을 담은 서사시이다)

마치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고자 한 내용과 유사하다. 사람의 생각이 집착을 낳아 오히려 일을 그르치니 생각을 줄여야 한다는 말처럼, 사람의 생각이 많아지면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가는 배처럼 자기 목표를 상실한다는 경구다.

그래서 베르길리우스는 “바람이 불어도 그 꼭대기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든 중심을 잡고 행해야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같은 생각의 연장선에 헤밍웨이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생각’에 대해 아래처럼 말한다.

“지금은 야구를 생각할 시간이 아니야. 그는 생각했다. 이제는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해야 돼. 나는 그 일을 위해서 태어났지. 저 고기떼 주위에는 큰 물고기가 있을 거야. 난 먹이를 먹던 다랑어 떼에서 낙오한 놈을 건져 올린거야. 다랑어 떼가 아주 멀리 빠르게 움직이면서 북동쪽으로 가고 있어. 하루 중 이때가 그런 때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날씨의 징조인가?”(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열린책들)

84일간의 흉어. 헤밍웨이의 소설 속 노인은 큰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다.

뜨거운 열대의 태양. 오늘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쏟아져 오는 잡념들. 부자들과 주고받던 농담 그리고 라디오로 중계되는 야구 등이 떠오른다.

그때 노인은 잡념을 끊어낸다. 푸른 별 지구에 태어난 거룩한 이유가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라고 자신을 다잡는다.

이렇게 생각을 줄여야 자신의 목표에 가깝게 갈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굳이 노인이 잡으려는 큰 물고기가 아니어도 된다. 각자의 꿈이어도 마찬가지다. 노닥거리며 꿈을 일궈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헤밍웨이가 본 것은 집중이다. 단테의 베르길리우스는 흔들림 없는 자기중심이다. 그리고 둘은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뚜벅뚜벅, 자신이 정한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더라도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중세의 과학자 바그너처럼 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많다.

#현명한 생각이 미련한 짓을 저지른다?
“앞 세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현명한 것을 생각해 낸 사람은 미련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법” (괴테 ‘파우스트’ 2부 2막 1장)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파우스트는 자신의 영혼까지 팔아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 과정에서 사탄 메피스토펠레스와 영혼을 거래한다. 이 인용구는 파우스트의 서재는 닫혀있고, 파우스트의 명성을 잇는 바그너가 그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한 말이다.

매우 역설적인 이 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그너는 중세의 연금술사들처럼 각종 장비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데, 여기서 바그너가 실험하는 것은 ‘인조인간’이었다.

즉 중세의 시스템으로 근대적 과학자의 연구대상에 심취해 있는 모습이다.

이같은 내용을 내다보듯 메피스토펠레스는 현명한 생각을 해 낸 사람이 미련한 짓을 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는 “포도즙이 아무리 별나게 굴어도 결국에는 포도주 밖에 더 되겠느냐”는 말을 덧붙인다.

현명함을 자부하던 인간들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냈을 때, 인간들은 더 이상 위험한 노동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으나 다이너마이트는 전쟁에서 수천만 명이 죽는 잔혹함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또한 영원한 에너지원을 갖고자 핵에너지를 연구했던 과학자들은 영구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 전체를 파괴할 정도의 가공할 핵무기가 만들어진 것을 보고 후회하기도 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어 괴테는 탁월한 통찰력을 내비추고 있다. 그 통찰의 비법은 어디에 있을까? 괴테만이 가능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카뮈는 이렇게 말한다.

# 자기 생각을 갖는데 10년이 걸린다.
“사람들은 그저 몇 가지 익숙한 생각들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불과 두세 가지 생각들을 가지고, 오가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세계의 틈에 끼어 그 생각들을 반들반들해지도록 닦거나 이것을 변모시킨다. 이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다 라고 제대로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데 10년이 걸린다”(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의 경구들을 모은 책 ‘또 다른 생을 사랑하는 그것마저도 나의 행복입니다’에 담긴 내용이다.

10년쯤 자신의 생각을 갈고 닦는다는 말에서 10년은 꼭 물리적 10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카뮈의 말처럼 세상사에서 한 발자국쯤 떨어져서 관조하듯이 바라보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낯설게 다가서지 않으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는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정말 자기 자신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10년이란 시간에 절망할 수도 있다고 카뮈는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을 단련시킬 때만이 통찰력을 얻게 된다는 카뮈의 이야기는 짧은 호흡으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 한마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단테의 ‘신곡’ 등에는 절망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굴복하지 않고 세상에 맞서면서 자신을 극한까지 내몰았던 인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카뮈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이 주인공들이 자신의 문명과 마주서면서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인간으로서 세상과 맞설 수 있는 그런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자기중심을 세우고 낯설게 세상을 맞이할 때 생각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