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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물을 가지고 오면 경비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감자를 바라본다. 도랑 속에서 죽임을 당해 생석회에 가려지는 돼지들의 비명에 귀를 기울인다.
산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민음사판 2권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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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포드 감독이 1940년 메가폰을 잡았던 '분노의 포도' 한 장면.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쫒겨난 조드 가독은 고물 트럭 한대에 몸을 의지해 서부를 향한다. 그 서부는 꿈의 땅이 아니라 또다른 차별이 기다리고 있는 분노의 땅이었다<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
“먼저 저의 굳건한 믿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뿐입니다. 즉 후퇴를 전진으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노력을 마비시키는, 이름 없고 비이성적이며, 부당한 공포가 바로 그것입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연설, 1933)”
◆두려움의 객관화를 요청한 루스벨트
1929년 미국발 경제 쇼크는 전세계를 대공황의 깊은 늪으로 빠뜨렸다.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라는 작품을 통해 대공황 발생 이후 미국의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소농의 붕괴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앞 문장은 추가적인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농산물을 파기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굶주린 도시빈민들이 애태우며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다.
대공황이 발생하고 3년 뒤 미국은 공화당의 후버 대신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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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공황이 일어났을 당시 뉴욕주지사였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떨쳐낼 것을 주문한다. 사진은 1933년 취임식 장면.<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
하지만 루스벨트가 이끌어야할 미국은 당시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사회 곳곳에서 분노가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평전격인 ‘위대한 정치의 조건’(조지 맥짐시 저)에 따르면, 당시 내셔널스틸사의 회장은 의회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자원은 물론 인내력까지 바닥났다”고 증언했다.
미국광산노동자연합의 대표는 “이 공화국의 정치적 안정이 위태로워졌다”고 말했으며, 뉴욕 주 출신의 한 상원의원은 “우리는 사회와 경제를 해체시키려는 힘에 맞서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라고 심각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농민단체의 대표도 “미시시피 강 유역의 농민들은 자포자기 상태다. 경제 사정뿐만이 아니라 의욕까지도 절망의 상태에 빠져있다”고 농촌지역의 엄혹함을 말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루스벨트는 1933년 3월 4일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라는 취임연설을 하게 된다.
미국의 모든 사회구성원이 두려움을 씻어내야 경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취지에서 한 연설이었다.
전염병처럼 퍼져 있는 두려움을 객관화시키지 못한다면,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 보는 것처럼 포도 수확철이 영글어 가듯 분노도 사람의 영혼을 가득 채울 만큼 영글게 돼 있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두려움을 객관화시켜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물론 두려움 그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말한 사람은 루스벨트가 처음은 아니다.
1580년 몽테뉴(Montaigne, Michel De)는 자신의 저서 ‘에쎄’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Book 1. Ch.18)라고 적고 있으며 베이컨(Francis Bacon)도 그의 책 ‘학문의 진보(De Augmentis Scientiarum)’(1623년)에서 “두려움 그 자체 외에 두려운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영국의 군인이었던 초대 웰링턴 공작 아서 웨즐리는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이다”(1831년 편지 중에서)라고 말한 바 있으며 ‘월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한 잡지의 기고문에서 “두려움만큼 두려워해야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1851년)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여러 사상가들이 두려움을 객관화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날 ‘두려움’에 대한 정언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대공황의 공포, 그 두려움의 크기가 워낙 컸기 때문에 무의식에 각인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케네디와 트루먼의 두려움
국민들에게 두려움에 대해 두려워 말라고 말한 정치인들은 이후 다수 등장한다.
“두려움으로 인해 타협하지 말 것이며, 남이 나에게 타협하자는 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존 F.케네디 취임연설, 1961년 1월20일)
존 F. 케네디(35대)의 취임연설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십시오”라는 구절 때문일 것이다.
당시 미국은 옛 소련과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특히 핵무기 및 인공위성 및 달 탐사선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무한경쟁 상황이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진보가 공포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본 케네디는 소련에게 양 진영 모두가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른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취임연설의 주제를 잡은 것이다.
그래서 케네디는 ‘예의바름’이 나약함이 아니고 ‘성실’은 반드시 입증을 요구한다는 점, 즉 미국은 끝까지 어떤 도발에도 강력하게 맞설 것임을 밝히면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협상하지 말자’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적으로부터의) 정상적인 협상의 요구도 두려워하지 말자고 미국민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케네디에 앞서 대통령을 역임한 해리 트루먼(33대)도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취지의 연설을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닥친 최악의 위험은 의심과 두려움에 둘러 싸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포기하고 희망을 비웃는 사람들이 퍼뜨린 위험입니다. 또한 냉소와 불신을 전파하고 인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잃게 하려는 자들이 만들어낸 위험입니다”(해리 트루먼)
이 연설에서 트루먼은 두려움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두려움과 걱정은 우리가 은행에서 빌린 적이 없는 빚에 대한 이자처럼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려움과 걱정이 자기 자신을 물론 타인에 대한 믿음마저 무너뜨린다고 지적하고 있다.
◆용기로 승화시킬 두려움 … 만델라와 맥아더
영화 ‘명량’에서 경험한 감동적인 장면은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적과 싸우면서 이순신 장군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이라고 되뇌듯 말하는 장면일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웅이자, 전세계에 평화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주었던 넬슨 만델라.
그의 90회 생일 맞춰 ‘타임’지는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2008년 7월 9일)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적이 있다. 이 기사에서 제시한 8가지 리더십은 다음과 같다.
- 용기란 단순히 두려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두려움을 뛰어 넘을 수 있도록 남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 앞에서 이끌되 당신이 바탕으로 삼는 것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 뒤에서 이끌되 당신이 뒤에 있는 것을 믿게 하라.
- 적을 알아라. 그들의 언어와 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배워라.
- 친구를 가까이하되 라이벌은 더 가까이 하라.
- 외양이 중요하다. 웃음은 더 중요하다.
- 흑백으로 완연히 구별되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 적절한 때 끝내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타임’지에서 거론한 첫 번째 덕목은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Long Walk to Freedom)’(1995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고 배웠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한 사람이다”(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1995년)
종신수로서 27년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감옥에서 모진 대우를 받았던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와 싸우면서 두려움을 느꼈고, 죽음의 공포도 경험했다.
그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 결국 1994년 남아공의 대통령이 됐다. 그래서 그는 당당히 용감한 사람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처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헥토르’와 같은 두려움을 학습과 훈련을 통해 정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델라처럼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치환시키자고 말한 유명한 군인이 있다.
더글라스 맥아더는 웨스트포인트 작별연설에서 그의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나이가 몇 살이든 모든 존재의 심장 속에는 경이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다음에 올 것에 대한 어린 아이 같은 무한한 감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는 만큼 젊어지고 의심하는 만큼 늙습니다. 또한 자신감만큼 젊어지고 두려움만큼 늙습니다. 여러분의 심장 한 가운데에는 기록실이 있습니다.
그 방이 아름다움과 희망, 격려와 용기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한 여러분은 언제나 젊을 것입니다.
의무와 명예 그리고 조국, 이 세 단어로부터 여러분들은 불굴의 용기와 풍부한 상상력, 인생의 깊숙한 곳에서 샘솟는 신선한 감성을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1962년 5월 12일, 웨스트포인트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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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2차 대전과 패전국 처리를 마치고 1951년 귀국을 한다. 사진은 시카고에서 전역장병 5만명이 모인 가운데 연설하는 장면<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
이 연설은 젊은 사관생도들에게 자신감으로 두려움을 떨쳐내고 젊음의 특권인 불굴의 용기와 풍부한 상상력을 무기로 세상에 나서달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
만델라와 맥아더의 메시지는 두려움은 스스로 극복해내야 세상과 마주설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살아가야 할 인생이기에 두려움에 굴복 당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자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선의 답은 인도의 정치인 자와할랄 네루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성은 공포와 불신과 싸우는 형편없는 무기다. 믿음과 아량만이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 < 저작권자 © BI 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