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일을 시작했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난해부터 자주 듣는 말 중에 ‘골든타임’이라는 단어가 있다.

지난 해 4월 눈물로 보낸 단원고 학생들의 구조를 두고, 최적의 구조 시간을 놓친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면서 언론들이 자주 언급했던 말이다.

이후 정부가 나서서 ‘경제 살리기’를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자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연초 들어 진행되는 정치권의 기자회견에도 단골손님 마냥 등장한다.

기왕 ‘때 놓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때와 관련한 두 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채플린, 명성과 천재성에 미혹당해 놓친 ‘소리’
허리우드의 변화, 영화판 대세 기운 뒤 깨달아

첫 번째는 인텔의 전 회장 앤디 그로브가 자신의 책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에서 소개한 바 있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이야기이다.

1927년 10월 6일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라는 최초의 음성영화가 개봉됐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영화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영화의 등장은 당시 무성영화의 스타와 감독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 관계자들은 변화를 모색하거나 적응을 시도했고 일부는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리 채플린은 주요 환경의 변화에 직면하고도 유성영화를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1931년 말까지 찰리 채플린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는 영화산업에 대항해 싸우고 있었다.

그 해의 인터뷰에서 찰리 채플린은 “나는 발성영화에 6개월의 기간을 더 주겠다”고 말했으며 3개월 뒤 또 다른 인터뷰에서 “대화체의 작품은 코미디에 자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물론 관중에 대한 채플린의 막강한 호소력과 장인 정신은 1930년대까지 무성영화를 성공적으로 지속시켰다.

▲ 찰리 채플린이 히틀러를 패러디해서 제작한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채플린은 토키영화가 자신의 무성영화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음성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채플린의 첫 음성영화가 '위대한 독재자'였다.(출처 : 위키미디어)

그러나 천하의 채플린도 대세를 거부할 수 없었다. 채플린은 결국 1940년 ‘위대한 독재자 더 그레이트 디렉터(The Great Dictator)’에서 대사를 도입해야 했다.

헐리우드가 음향 도입에 반응을 보인지 10여년이 지난 뒤 보여준 채플린의 반응이다.

‘위대한 독재자’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등의 성공 뒤에 발표된 점을 보면 채플린의 마지막 선택이 어떤 배경에서 이뤄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찰리 채플린은 음향기술이라는 카이로스(운명적 시간, 논리적 시간)적 순간을 무시한 결과, ‘무성영화의 제왕’에서 ‘유성영화 시대의 지는 해’가 되고 만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예를 통해 앤디 그로브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ection points)’이다.

앤디 그로브는 자신의 책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에서 전략적 변곡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략적 변곡점이 발생하는 시점은 정확히 언제일까? 되돌아보면 그 때를 꼭 짚어내기는 어렵다. 친구들하고 하이킹을 하다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해보자. 일행 중에 약간 소심한 친구가 맨 먼저 리더에게 물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실해? 혹시 길을 잃은 건 아니지?’ 리더는 그의 말을 뿌리치고 계속 행진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나 낯익은 표지판이 안 보이면서 불안감이 쌓이고, 어느 지점에선가 리더는 마지못해 가던 길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이며 사실을 실토한다. ‘애들아, 길을 잃은 것 같아’ 기업에서 바로 이 순간을 전략적 변곡점이라고 한다”

음향처리 기술이 등장하는 시점, 채플린의 명성과 천재성은 그 기술의 진가를 볼 수 없도록 미혹하게 만들었고, 영화판에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전략적 변곡점이 지나서야 알아차리고 만 것이다.

삼성, 자동차 공급과잉 불구하고 섣부른 진출
위기 돌파위해 계열사 10개 매각, 5만명 감축

두 번째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는 삼성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동차 마니아다. 연전까지만 해도 이건희 회장의 스포츠카 구매가 화제가 돼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고 내놓으라는 차들을 애마로 소장하고 있다는 가십도 심심치 않게 소개되기도 했다.

자동차를 좋아해 자동차 산업까지 진출했던 그였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삼성자동차를 발족시킨다. 삼성이 1970년대에 전자, 1980년대에 반도체로 국가 발전에 공헌했듯이, 1990년대에는 자동차로 국가 경제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1997년 이건희 회장의 삼성자동차 발족의 변이다.

▲ 삼성자동차 출범 당시의 신문 지면

그러나 당시 시장 상황은 자동차의 공급과잉이 진행되던 때이다.

1990년에서 1995년까지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은 연평균 13%씩 성장하던 고도성장의 시대였다.

IMF에 달해서 내수시장의 성장률은 4%대로 급락한다. 매년 160만대의 승용차를 소비할 수 있는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이미 국내 업체들의 연간 240만대 생산능력으로도 차고 넘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회장의 개인적 선호를 이유로, 당시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 마저도 반대하던 자동차 공장을 부산이라는 지역과 정치권력의 요구를 연결시켜 사업에 진출한다.

그러나 경제 위기에 직면했던 삼성은 계열사 10개를 매각하고 직원 5만명을 감축하는 쓰라린 희생을 경험해야 했다.

과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카이로스적 순간을 넘어섰다는 의미이며 전략적 변곡점에서 꼭짓점을 지나 하락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런데도 이건희 회장은 사업을 진행시켰다.

아마도 이 회장은 카이로스적 순간에서 삼성자동차가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현대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 불행히도 이들도 다 매각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를 능가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였을 것이며 이 전망이 결국 의사결정을 왜곡시켰을 것이다.

채플린의 영화적 성공과 명성이나 삼성의 연이은 성공과 국제 브랜드는 그런 점에서 매우 유사한 환각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이번에는 카이로스의 순간을 크로노스(물리적 시간)의 시간으로 대응해 불행해진 사례를 소개하겠다.

피바람 부른 영국의 조급한 탈제국주의 정책
인위적 ‘마감시한’이 초래한 힌두-이슬람 갈등

2차 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무거운 제국주의의 옷을 벗어놓으려 했다. 제국을 유지하면서 두 번의 크나큰 전쟁을 치루면서 상처만 남았기 때문이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처칠과의 승부에서 승리한 노동당의 애틀리는 인도를 포함한 식민지의 독립계획을 추진한다.

▲ 영국 식민지 당시의 인도의 지도. 현재의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전체가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힌두와 이슬람이 갈등을 벌이고 있었다. 영국의 지나치게 도식화된 탈제국주의 정책은 이들의 갈등을 피바람으로 연결시키고 말았다.

1947년 8월 15일로 못을 박고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현지에서의 갈등구조를 해결하지 않고 추진되어 결국 수백만명의 희생을 치르게 된다.

인도에서는 회교도와 힌두교도가 서로를 죽이고 추방했으며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들과 이슬람 세력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국가의 독립이라는 카이로스적 순간은 인위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만족시킬 수 없는 거대한 과제이다.

이런 과제를 영국은 자신의 피로감을 이유로 손놓고 말았던 것이다. 제국주의를 취할 때만큼 제국주의에서 손을 놓을 때도 신중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시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카이로스의 순간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취해서 해결될 수도 없고 시간이 자연스럽게 알려주지 도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이 카이로스의 시간인지 확인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한다.

“오늘 이 일을 막 시작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오는 이 프로젝트를 내가 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오늘 이 회사를 물려받았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수시로 자문해보자.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