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준 1년의 시간이 새롭게 시작됐다. 새해 초면 누구나 올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그 방편으로 금주, 금연, 운동 등의 약속을 자신과 하면서 결기를 보여주기는 때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차별 없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결과는 시간의 역사와 개념만큼 다르게 나타난다.

신화와 종교 속에서 역사를 일궈온 고대 그리스 및 히브리 사람부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사적인 시간은 다르게 나타났고 그 해석과 활용도 천차만별이었던 것 같다.

▲ 트로이전쟁이 발발한 이후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전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전쟁을 기피하기 위해 리코메데스의 딸 중 한명으로 분장을 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박물장수를 가장하고 그들에게 고귀한 보석을 펼쳐보이는데, 그 중 칼 등 무기를 포함시켰다. 아킬레우스의 영웅 본능은 칼을 피해가지 못하고 말았고, 결국 카이로스의 시간을 선택하게 된다. 그림은 루이 고피에 作, ‘리코메데스의 딸들 중에서 아킬레우스를 알아본 오디세우스’.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소장.

◇ 고대 그리스와 히브리의 시간관
현자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히브리의 솔로몬은 자신의 시간관을 “모든 일에는 다 그것을 행해야할 알맞은 때(zeman)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우주의 순환에 적당한 때(eth)가 있다(‘구약’ <전도서> 3장 1절)”라고 정의하고 있다.

‘제만(zeman)’은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일을 시도하고 달성해야 할 시간을 말하는 것이며, ‘에트(eth)’는 사계절의 흐름과 같이 우주와 자연의 순환주기의 시간‘이라고 한다.

신화의 나라이자 민주주의의 발상지, 고대 그리스에도 시간의 개념이 다수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일상의 시간’, ‘지내보면 순간인 시간’, ‘현재도 여전히 쳇바퀴 돌 듯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이다.

또 다른 시간관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신이 이미 예정한 시간’이자,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의 경험이 지속되어 영원이 되는 시간’, ‘내가 주도하여 변화를 낳고 때론 고통이 동반되는 시간’, ‘과거 현재 미래가 현재에서 만나는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이다.

▲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하세계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필살기인 리라를 들고 하데스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음악으로 감동시켜 아내를 구출하나,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겨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림은 조아키노 셀란젤리 作 ‘간청하는 오르페우스’ 18세기, 파리음악박물관 소장.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카이로스를 상대방과 대화할 때 삶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내가 제시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에트’에 해당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전쟁에 참전하면 영웅이 되나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도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길 바라면서 스스로 자신만의 시간을 역사로 만들기 위해 참전한 그 시간이며, 죽은 자를 데려오거나(오르페우스) 미래의 일을 알아보기 위해(오뒷세우스) 아니면 영웅다운 영웅이 되기 위해서(헤라클레스) 하데스(지하세계, 죽음의 세계)로 내려간 그리스의 영웅들이 선택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대교 랍비가 히브리 성경의 첫 구절인 ‘In the Begining’을 해석하면서 “신이 우주를 제일 먼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창조했다”는 설명에 등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며, 예수가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마리아에게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2장4절)라고 말한 그 때도 카이로스이다.

▲ 예수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에 대한 부탁을 하자, 아직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 때는 신이 개입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그림은 두초 디 부오닌세냐 作 시스티나성당의 제단장식화 ‘가나의 결혼식’, 1308~1311, 시스티나성당

이처럼 통과의례를 거쳐 새로운 단계에 이르는 시간이자 과거의 오래된 자아를 극복한 시간인 카이로스의 순간들은 우리가 ‘고전’이라 일컫는 수많은 책에서 찾을 수 있다.

◇ 근대의 시간 ‘표준시’와 공적 시간을 해부하는 소설가
이 시간의 개념이 근대의 산업혁명 공간을 거치면서 혁명적 변화를 거치게 된다.

기계장치로 구동되는 시계가 발명된 것은 14세기. 그 이후 시계장치의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지도에 경도를 그릴 수 있게 됐으며, 근해만 오가던 항해가 대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로 발전하게 됐다.

또한 19세기 산업혁명의 공간에서는 전 세계가 단일한 시간의 구조로 편입되는 표준시가 등장하게 된다.

표준시 제정 여론은 열차와 선박 등 동일한 시간표가 적용돼야 이용자들의 혼선이 최소화되는 영역에서 비롯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까지 확장했고, 또 일부 국가의 군사전문가들은 군사적 목적(전투 등의 군사작전의 동시성 확보)을 들어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결국 1687년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절대적이고 참되고 수학적인 시간은 그 자체로 그 본성에 의해 다른 대상과 관계없이 똑같이 흘러간다”고 정의했던 절대적 시간 개념은 산업혁명 과정에서 공적 시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1884년,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표준시가 채택돼 공적 시간이 신화와 종교를 등에 없고 우위에 섰던 사적 시간을 앞서 된다.

하지만 공적 시간의 한계는 근대성과 산업화의 한계와 함께 소설가들의 손에 철저하게 해부되고 만다.

첫 번째 시도는 ‘어둠의 핵심’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밀정(The Secret Agent)’에서 나타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는 영국에서 그리니치천문대를 날리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단일한 공적 시간의 권위, 즉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에 대한 구체적인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진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통해 드레퓌스 사건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공적으로 확실하게 구별되는 시간을 시계의 문자반 위에 피상적으로 표시되는 시간으로 정의하고 “내 안에 가득 찬 힘의 무게가 서서히 증가함으로서 흘러가는 시간”을 갖으려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과정에서 기억들이 희미하게 뒤척이는 소리를 듣게 된다.

프루스트는 기억을 되찾으려 노력하면서 기계장치로서 시계의 무의미함을 들춰냈다면, 프란츠 카프카는 공적 시간을 통해 근대성이 내포한 공포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소설 ‘변신’에서 해충으로 변신한 주인공은 탑승해야할 기차를 놓칠 것을 알자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그의 1922년 일기를 살펴보면, 공적 시간과 사적시간의 불일치가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자는 것도, 깨어나는 것도, 삶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시계가 맞지 않는 것이다. 내부의 시계는 사악하게 혹은 악마라도 씐 듯이 달려간다. 반면 외부의 시계는 비틀비틀하면서도 자신의 본래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간다” (‘카프카의 일기’ , 스티븐 컨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에서 재인용)

스티븐 컨의 설명에 따르면 카프카의 주인공들은 너무 일찍 도착하면 부조리함을, 늦게 도착하면 죄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20세기 위대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의 구도를 차용해 쓴 ‘율리우스’에서 ‘오뒷세이아’가 전쟁과 방황으로 보낸 26년의 시간을 더블린 거리의 상점과 술집들을 어슬렁거리는 레오폴드 블롬의 16시간으로 압축해버린다.

한마디로 공적 시간을 자의적으로 압축해버린 것이다.

한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은 ‘모친 사망, 내일 장례 예정’이라는 전보를 받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공적 시간이 어제인지 오늘인지 헷갈려한다.

이처럼 19세기 말부터 20세기의 계몽주의적 근대성을 바탕으로 작품을 쓴 작가들은 ‘공적 시간’을 한결같이 피상적이거나, 공포스럽거나, 자의적이거나 아예 공적 의미를 상실한 형태로 묘사한다.

▲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는 뉴욕에서 이 작품을 처음 소개하였는데, 시간들의 뒷배경인 바닷가는 자신의 고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고 그림 속의 시계들은 과거의 달리와 그의 억눌린 욕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림은 달리의 ‘기억의 지속’, 1931년,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이유는 공적 시간에 사적 시간이 투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투영시킬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게다.

그러다보니, 고대 그리스의 시간 개념인 ‘카이로스’가 현대인들의 삶에 중요한 개념으로 부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신이 의미를 부여했다면 현대에는 인간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 그리고 극한의 경험을 통해 통과의례의 목적을 성취하는 시간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하데스를 경험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극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뜻깊은 검토와 반성, 재검토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온전하게 살기 위해 극한의 경험– 오뒷세우스는 하데스에서 만난 많은 영웅들을 통해 그가 풀어야 할 문제와 극적 사건들을, 그리고 과거에 화해했어야 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을 한 이 주인공들은 타자에 대한 배려를 근간으로 영웅적 존재로 완성된다.

신이 인간에게 준 시간은 흐르면 사라져 버리는 공적 시간이다. 하지만 사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이는 결정적 시간으로 변화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이 그랬듯이.

그래서 빌 게이츠는 오늘에 충실하자고 이야기하고 시간보다 앞서 달릴 것을 요구하고, 시간을 장악하라고 이야기한다. 시간에 이끌리는 삶은 카이로스의 시간이 아니라 크로노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담배값도 많이 올랐고 경기전망은 매우 불투명한 한 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는 것이 고귀한 인간의 존엄이다. 각자의 과거 미래 현재를 오늘에 모아서 절실한 마음으로 시간과 만나보자.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