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사람의 학문이다. IT기술 또한 사람을 위한 기술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들어 인간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이 기술에 대해 우리는 ‘가치’ 판단을 미루고 쓰임새와 편리함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곤 했다. 가치를 상실한 기술이 인간세계에 가져다준 폐해를 굳이 여기서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겠다. 다만 인문학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인간을 위한 기술을 인간의 학문으로 바라볼 필요성은 그 만큼 커졌다는 생각으로 글모음을 시작할까 한다. 평행선을 걷는 기술이 아니라, 교차점을 찾는 기술을 위해....<편집자주>

▲ BI코리아 편집위원

◆플라톤 ‘국가’와 조지오웰의 ‘1984’ 그리고 박근혜 정부 =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지금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크로노스가 한 짓이나 그 아들에게서 당한 일은 설사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철없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그 일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상책일세. 그러나 만약 꼭 얘기할 필요가 있다면, 듣고자 하는 사람들만 듣도록 새끼돼지가 아니라 무엇인가 큼직하고 구하기 어려운 재물을 바친 다음에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몰래 들려줘야 할 것일세”

2500년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위의 글은 현직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고, 그 뒤의 글은 2500년전 플라톤이 ‘국가(Republic)’에서 당대의 시인들이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수위 조정없이 신화에 나온 신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한탄하며 이야기한 것이다.

플라톤이 ‘국가’를 집필하게 된 까닭은 참혹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문으로 보인다.

이 전쟁 중에 아테네에서는 성인이 되기 전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하니 그 처참함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서로를 증오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지를 고민한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플라톤은 폭력과 선정적 내용이 가감없이 실려 있는 신화를 공공연하게 검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이 폴리스 시민들의 폭력적 기질을 더 키운다고 본 것일 테지요.

이유야 어떻든, 그런 까닭에 플라톤은 자유주의의 대표적 학자인 칼 포퍼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게 된다.

검열을 통해 사람들의 언로를 차단하는 것은 ‘열린사회’를 방해하는 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플라톤은 2500년 지난 오늘날 한국에서 보다는 우아하게 접근한다.

말을 아예 없애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말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신어의 목적은 영사의 신봉자들에게 어울리는 세계관과 정신습관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다. 적어도 사상이 언어에 의존한다고 한다면 신어가 일단 채택되고 구어가 잊히게 되면 이단적 사상, 즉 영사의 원리에 위배되는 사상은 글자 그대로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고안된 것이다”

“유언비어 명예훼손 범죄에 대한 실시간 자료를 공유한다”, “개별피해자들의 권리구제 요청에 응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 “검찰 전담 수사팀에서 해당 글 등의 명예훼손이나 모욕 여부 등 법리 판단을 신속히 해서 포털사에 직접 삭제를 요청한다”

이 두 글은 한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있다.

앞선 글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표현된 빅브러더의 언론통제 원칙이다.

뒤의 글은 지난 9.16 국무회의 직후 검찰이 관계기관 회의를 통해 도출한 결론 및 언론에 발표된 발언들이다.

앞의 글은 통치 이데올로기의 메타적 사고라고 한다면 뒷글은 그 사고에 지배되어 마당쇠 역할을 하는 하수인의 모습 정도가 될 것이다.

뒤의 글이 언론에 발표되면서 ‘모독, 유언비어, 명예훼손’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다음카카오의 주가는 13일 하루에만 7.76% 하락했고 이 파장의 끝이 어디가 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진화에 나서 사과를 했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의 감청영장 및 압수수색 요청에 수백건에서 수천건 응했다는 것까지 확인됐다.

결국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이다. 온라인은 뜨겁다 못해 무엇이든 태울 지경에 이르렀다.

애플의 광고 중 지금도 많은 네티즌들에게 기억나는 광고가 하나 있다.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빅브라더 IBM을 상대로 맥킨토시를 출시하면서 군중들이 멍하게 바라보던 텔레스크린에 햄머를 던지는 광고다.

스크린이 깨어지는 모습을 광고로 전달하면서 형성된 강한 애플의 카리스마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것이 인문학의 힘일 것이다.

창조경제는 상상력에 근간한다. 상상력이 없었다면 ‘1984’를 대입시킨 애플의 광고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정보기술과 리버럴아츠의 교차점’에 서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MP3시장은 물론 태블릿PC,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격조성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4년 10월 대한민국에서는 100만에 이르는 사이버 망명객이 발생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심지어 ‘사찰, 검열’을 맡은 바 임무로 수행해야 하는 경찰과 검찰에서까지 망명을 하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창조경제를 할 것인지 아니면 통치를 위해 모든 권력을 활용할 것인지 선택해야할 것 같다.

이석우 다음카카오대표가 무슨 힘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는 검찰의 요구에 항거하는 투사가 되겠는가.

법무부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도 카카오톡을 사용한다고 하면서 사이버 망명 사태에 대응하고 나섰지만, 그들의 휴대폰에 ‘텔레그램’이라는 앱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좋은 정치는 솔직함에서 긍정이 비롯된다.

“코스닥 등록을 앞둔 기업의 미래를 자신들의 귀와 눈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실체를 죽이려는 겁니까? 창조경제의 한 축을 이끌 인터넷 공간을 ‘무식은 힘’이라는 ‘1984’의 구호로 채우시렵니까? 칼 포퍼가 비판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문학의 한 축을 이끌고 있는 플라톤의 최고 덕목은 그래도 솔직함입니다”

“솔직함이 탁월함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탁월해야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BI코리아 김승호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